따뜻한 사랑
따뜻한 사랑
우연히 자녀교육에 관한 영상을 보게 되었다.
자녀를 잘 키우고 싶다는 딸에게 나이가 지긋하신 어머니는 ‘자녀는 잘 키우려고 낳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려고 낳는 것’이라고 얘기해주시는 내용이 담긴 짧은 영상이었다. 들어보지 못했던 말이다. 그 어머니 왈, ‘자녀는 사랑만 주기에도 터무니없게 시간이 부족하다’고 했다. 하루 종일 그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모든 부모는 자식이 잘되기를 바란다. 그래서 아직 말도 서툰 아이 때부터 영어학원이며, 피아노 학원이며 보낸다. 잘 키우고 싶어서다. 그런데 진짜 잘 키우는 방법은 사랑을 듬뿍 주는 거란다. 집이 사람의 온기를 먹고 버티듯 아이들은 부모의 사랑을 먹고 자라기 때문이다. 문득 목사님 말씀이 생각난다.
“자식을 사육하지 말고 양육해라.”
나의 성장 과정을 돌아보았다. 오늘의 내가 있는 건, 나에게 사랑을 듬뿍 주시고 길러주신 분이 있어서다. 물론 내 부모의 사랑이 있어서 나는 잘 자랐지만, 더욱 크신 사랑을 주신 하나님이 계셔서다.
하나님은 어머니의 품처럼 늘 따뜻했다. 나는 그 하나님이 내 모든 것을 아시고 들어주실 것이라는 순수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때론 미운 짓도 하고, 실망스러우실 때도 많이 있었을 텐데도 그분은 늘 한결같이 사랑으로 받아주셨다. 그랬기에 곁길로 가지 않았고, 나를 지켜봐주시는 분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 내 어린 시절을 지켜주신, 지금도 함께 해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다.
우리 주님이 우리를 무조건 사랑하셨듯이 우리도 자녀들에게 사랑을 아낌없이 듬뿍 주자. 사랑은 최고의 성장제이니까.
이인영 집사
욕심의 방향을 바꾸자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慾心)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약1:14~15).
‘욕심’이란 말은 사전적 의미가 분수에 지나치게 탐내거나 누리고자 하는 마음을 뜻하기 때문에 좋게 쓰인 적이 별로 없다. 자신이 쓰기에 충분히 만족할 만큼 이미 가지고 있음에도 괜히 더 소유하고 누리고자 하는 마음이 바로 욕심이다. 그렇다고 ‘분수에 맞게 살자, 형편과 주제를 알자’ 하면 괜히 믿음 없는 사람처럼 여겨지진 않을까? 그러니 우리 욕심이 과연 무엇을 추구하고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느냐의 문제다.
원하는 것을 얻으려면 대가가 필요하다. 우리가 원하는 것이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라면, 그 대가 또한 눈에 보이지 않을 것이다. 히스기야가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하나님의 사형선고를 들었을 때, 그는 이렇게 간구했다. “내가 주의 앞에서 진실과 전심으로 행하며 주의 목전에서 선하게 행한 것을 추억하옵소서!”(사38:3). 하나님은 즉시 그의 수명을 15년 연장해주셨다. 대체 얼마나 진실과 전심으로 하나님을 섬겼으면 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실까! 모세가 얼마나 온유했으면 땅 위의 모든 사람보다 더 온유하다고 했을까. 다윗이 얼마나 하나님을 경외했으면 그를 내 마음에 합한 자요,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고 하셨을까! 우리가 욕심을 내야 할 것은 이런 것들이 아닐까.
마태복음 20장에 세베대의 두 아들들의 어머니가 예수님께 자신의 아들들을 하나님의 나라에서 각각 주의 우편과 좌편에 앉게 해달라고 구한다. 그러자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크고자 하는 자는 섬기는 자가 되고,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종이 되어야 한다.” 사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이미 모든 것을 버려두고 주를 좇았고, 열두 제자 중에서도 예수님의 최측근이라 할 수 있는 세베대의 두 아들들이라면 ‘예수님의 오른팔과 왼팔’이라는 타이틀은 얼마든지 노려볼 만한 게 아니었을까. 그러나 예수님은 오히려 거기서 더 희생하고 섬기며 낮아질 것을 요구하셨다.
세상적인 욕심에서 거룩한 욕심으로, 욕심의 방향을 바꿔보자. 내가 속한 곳에서 그 누구보다도 더 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점점 더 예수님을 닮아가고, 성령에 충만하여 열심으로 봉사하기를 욕심 내보는 건 어떨까.
신혁주 전도사
감사
소크라테스는 총각 시절에 여러 명의 친구와 비좁은 방에서 같이 생활하고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물었습니다.
“그 좁은 방에 여럿이 살면 불편하고 짜증이 날 텐데, 뭐가 그리 즐거워 그렇게 웃고 다닙니까?”
소크라테스는 대답했습니다.
“친구와 함께 사니 즐겁습니다. 서로 경험을 나누고 지식도 나누고 서로 도울 수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그 뒤에 같이 있던 친구들이 결혼을 해서 하나둘씩 떠나고 소크라테스 혼자 남게 되었습니다. 그때 그 사람이 다시 물었습니다.
“여럿이 살아 좋다더니, 지금은 혼자 사는데도 여전히 웃고 있으니 그 까닭이 무엇입니까?”
“지금은 여기 있는 많은 책들을 내 마음대로 언제나 볼 수 있으니 어찌 기뻐하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친구들도 찾아오기 좋구요.”
그 뒤 소크라테스가 결혼을 했는데 건물의 제일 아래층에 살았습니다. 친구가 물었습니다.
“아래층에 살면 위층에서 쓰레기도 던지고, 쥐도 많고, 냄새도 나는데 자네는 뭐가 좋아서 그리 웃고 다닙니까?”
“1층에 사니까 채소도 내 손으로 심을 수 있고 꽃도 가꿀 수 있고, 계단을 오르내리는 수고를 안 해도 되니 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그 이후 위층에 사는 친구 아버지의 다리가 불편해져서 계단을 오르내리기가 힘들어지자 소크라테스는 집을 바꾸어 주었습니다. 친구가 또 물었습니다.
“전에는 1층이 좋다했는데, 지금은 위층으로 옮겼는데도 여전히 웃고 있고 있으니 무슨 일입니까?”
“위층에 있으니 조용하고 멀리 좋은 경치도 보입니다. 계단을 오르내리니 운동이 되어 건강에도 좋지요.”
그 친구는 소크라테스 제자인 플라톤에게 묻습니다.
“자네 선생은 어떤 환경에서도 감사하면서 사는데 그 이유가 무엇인가?”
플라톤이 대답합니다.
“사람이 갖는 감사의 속성은 환경에 있는 것이 아니고, 그 사람의 마음속에 있기 때문이지요.”
그렇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향하신 하나님의 뜻은 “범사에 감사하라”입니다(살전5:18).
늘 좋은 길로 인도해주시는 하나님
내 어린 시절은 참 가난했었다. 아빠가 일찍 돌아가시고 엄마가 혼자의 몸으로 딸 둘을 키우셨다. 엄마는 안 해본 일이 없을 정도로 고생을 많이 하셨다. 딸들이 잘 자라기만을 바라시며 기도로 두 딸을 키우셨다. 그렇게 어려웠던 시절에 엄마는 하나님을 만나셨고 우리는 다 같이 교회를 다니게 되었다.
내가 중학교에 들어갈 무렵 엄마는 갑자기 신학교에 가신다고 하셨다. 그때 신학교는 장성 기도원에 있어서 엄마는 월요일 아침에 내려가셨다가 금요일이나 토요일에 올라오셨다. 난 어린 동생과 함께 이모에게 맡겨졌다. 그때 많이 힘들었고 그 힘든 마음으로 어린아이가 기도했던 것이 “예수님, 엄마를 드리니 저희 인생을 책임져주세요.”였다.
그렇게 세월이 지나 엄마는 주의 종이 되셨고, 나는 대학을 졸업하고 중고등부 교사를 하며 취직도 하여 돈을 벌게 되었다. 그때 상황을 생각하면 여러모로 참 감사했다. 월요일만 빼고 매일 교회에 나가 기도 모임과 예배를 드렸고, 열심히 일해서 번 돈으로 아이들을 심방 다니며 주일학교 교사로 섬겼다. 유치원 교사를 하고 야근을 하며 공부도 하고 정말 열심히 일하고 공부했다. 참으로 치열하게 살았었다.
그때를 돌이켜보면 정말 하나님 뜻대로 살았던 순수했던 20대였던 것 같다.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행동은 안 하고 좋아하실만한 행동들을 많이 했던 귀했던 시간. 엄마는 신앙적인 부분에 대해서 매우 엄격하셔서 동생과 나는 하나님 뜻대로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필사적(?)으로 했던 것 같다. 일을 처음 시작할 때 첫 급여가 89만 원 정도 되었던 것 같다. 그 돈을 첫열매로 드리고 두 번째 급여를 탔을 때 고생하신 엄마께 도움이 되고자 하는 마음에 신용카드를 만들어 사용하실 수 있도록 드렸었다. 엄마도 딸이 준 카드라 마음껏 사용하지는 않으셨던 것 같다. 딸이 힘들게 번 돈이라 생각하셔서 그러셨겠다는 생각이 이제 와 들었다. 그래서 나는 돈을 많이 벌고 싶었다. 엄마께 효도해야지, 하나님 일해야지, 가족들 잘 살펴야지 하는 마음에서였다.
그런데 남편을 만나 결혼하려고 보니 돈이 없는 상황이었다. 남편은 학업을 마치지 못해 유학 생활도 다시 해야 하는데 돈이 없었다. 우리는 모아둔 돈을 가지고 믿음으로 유학 생활에 나섰다. 온전히 하나님만 의지하는 믿음으로. 정말 가난한 유학 생활이었지만 믿음 좋고 나를 많이 아껴주고 사랑해주는 남편이 있었기에 감당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결혼한 지 11년이 지났다. 그동안 나는 하나님께 늘 감사했었다. 좋은 배우자 만나게 해주셔서 감사하다고. 좋은 아버님, 시댁 식구들 만나게 해주셔서 감사하다고.
어린 시절을 힘들게 보냈던 나에게 하나님께서는 좋은 배우자를 선물로 주신 것이다. 어린 나이에 엄마를 하나님께 드린다는 기도를 했던 마음을 보셔서일까? 이제까지 수고 많았으니 사랑 많이 받으며 행복하게 살라고 주신 선물처럼 말이다. 어린 시절 아빠가 일찍 돌아가셔서 아빠에 대한 기억이 많지 않은데 우리 아버님의 사랑으로 그 사랑 또한 느끼고 있다.
하나님은 공짜가 없으신 분이다. 늘 좋은 길로 인도해주셨고 지금도 그렇다.
정효경 집사
happy_holly@naver.com
오래전 영국의 서부지방 랭카셔의 항구도시 리버풀에 있는 선원들의 숙소에 대형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미처 탈출하지 못한 선원들이 높은 층으로 불을 피해 도망갔지만 더 이상 피할 곳이 없자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살려달라고 소리를 치며 구조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어렵게 사다리를 찾아왔으나 사다리가 짧아서 사람들이 어찌할 바를 모르고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습니다. 그때 용감한 선원 한 사람이 짧은 사다리 위에 올라가서 자신의 몸을 밟고 내려오라고 외쳤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 사람의 몸을 밟고 내려와 구조를 받았습니다. 한 사람의 희생으로 인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안전하게 내려올 수 있었습니다.
2천여 년 전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도 죄로 인하여 영벌의 지옥에 떨어질 수밖에 없는 우리를 위하여 불타는 지옥에서 천국으로 탈출할 수 있는 사다리가 되어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숭고한 희생으로 인하여 본질상 진노의 자녀요, 하나님과 원수 되었던 우리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놀라운 축복의 길이 열린 것입니다. 이 얼마나 기쁜 소식입니까?
구원받을 수 있는 사다리는 오직 예수님뿐입니다. 천하 인간에게 예수님 외에는 구원받을만한 다른 이름을 주신 적이 없고, 예수님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시종을 알지 못하는 인생이기에 고민할 겨를이 없습니다. 지금 예수님을 영접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길 바랍니다.
상화평 목사
sanghwapyung@hanmail.net
예견된 꿈
오래전 딸아이의 교회 초등학교 교사였던 집사님으로부터 전화를 받았습니다. 서울을 떠난 지 수년이 흘렀지만, 그 시절 함께 은혜와 교제를 나눴던 좋으신 분입니다. 며칠 전 저에 관한 꿈을 꿨답니다. 꿈 내용은 이랬습니다.
“집사님이 3~4층 되는 건물을 소유하고 있는데, 인테리어는 대체로 괜찮은 편이었습니다. 그런데 건물이 땅속으로 꺼져있어 지상에서 들어갔는데 건물의 4층이 나왔습니다. 지하로 내려가듯이 가니까 3층, 2층 이런 식으로 아래층이 나왔습니다. 바닥면은 뻥 뚫려 있어서 자갈, 흙 같은 게 보였고, 헛디디면 거기로 빠질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꿈 이야기를 듣고 저는 생각이 깊었습니다. 전 세계적인 경제 위기에 살고 있고, 그에 따른 한국의 경제 위기도 살벌한 지경이라는 것을 높은 은행 이자로 뼈저리게 실감하고 있는 시절입니다.
오래전,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고 생각하고 분양받은 상가와 오피스텔은 지금 황금알은커녕 그나마 갖고 있던 황금을 잡아먹는 괴물로 전락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살아가는 지금, 그 집사님의 꿈은 예견된 꿈입니다.
그러나 꿈대로라면 아직 전체적으로 괜찮은 4층이 있고, 지금까지 위기에서 구원해주신 주님이 계심으로 문제는 문제가 아님을 알고 있습니다. 힘든 문제와 위기가 있을 때마다 함께 해주신 그분의 전지전능하심을 믿습니다. 지금의 위기 또한 그분의 다스리심으로 해결될 것입니다.
여태껏은 골방에서 작은 영역을 두고 기도했지만, 이제는 전 세계의 위기를 의식하며 큰 영역의 기도로 주님 앞에 기도합니다. 지금의 경제 위기인 이자 폭탄으로 가계에 어려움이 생기고, 세입자를 찾는데 힘든 일은 혼자만의 일이 아님을 압니다. 결국 주님께서 사랑하는 당신의 자녀에게 큰 기도를 품는 자녀로 양육시켜주시고 다시 한번 믿음으로 전지전능하신 다스리심을 체험할 수 있게 하실 것입니다.
긍정의 힘과 기도로 서 있는 지금의 자리에서 없어진 2, 3층은 곧 복구될 것이며 다시 한번 살아계신 주님을 만날 것입니다. 위기를 통해 소망과 희망을 주신 주님께 모든 영광 돌리며, 꿈으로 함께하신 믿음의 집사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할렐루야 아멘~!!
오자유 집사
lovelyactor@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