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 연습
만나면 헤어지고, 또다시 만나는 게 인생인가. 이게 어디 인생뿐이던가. 여름의 푸르름을 뽐내던 잎사귀들도 가을이 깊어가면 가지를 떠나 도로를 뒹굴다 사라져간다. 죽고 또 새 생명으로 이어지고, 이것이 하나님께서 이 땅에 부여한 질서다. 그러니 삶과 죽음의 이별이든지, 삶 가운데 흔히 지나가는 만남과 헤어짐을 우리는 흔쾌히 받아들일 수 있는 자세가 필요하다.
우리 어머니도 팔팔하던 노년의 시간이 100세 넘게 계속될 줄 알았지만, 어느 순간 꺾어져 이제는 침대에 누워계신 지 3년째다. 기억력도 오락가락하고, 하루의 시간이 낮인지 밤인지도 분간하지 못하신다. 눈앞에서 사라지면 함께 있는지조차 알지 못하신다. 현재의 기억만이 존재하는 것이다.
어린 시절, 어머니가 떠주시던 밥숟가락을 ‘아~’하며 냉큼 받아먹던 내가 이제는 정반대로 어머니 입에 밥숟가락을 내밀며 ‘아~’ 하곤 한다. 어머니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았을 자식의 입으로 들어가는 밥숟가락을 보며 흐뭇해하시고 사랑이 넘치는 표정을 지으셨던 것으로 기억하지만, 이제 나이 든 자식은 그런 어머니의 심정을 따라갈 수 없는 것 같다. 그냥 더 편찮으시지 않게 지내시다가 주님 품에 편안히 안기시길 기도할 뿐이다. 몸이 힘드시면 “아이고, 죽겠다~” 하시는데, 그럴 때면 “하나님이 초청장 보내시지 않음 어림도 없어요.” 하며 같이 웃는다.
이렇게 날마다 나는 어머니와 이별 연습을 한다. 긴 세월, 일제 치하부터 6·25전쟁, 그 이후 숱한 역사의 변곡점들을 지나며 오로지 자식들을 위해 헌신하신 그 고단했던 이 땅의 삶도 이렇게 끝을 향해 흘러간다. 우리 인간에게 한번 죽는 것은 하나님께서 정한 법이고, 여기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없기에 또 언젠가 우리 또한 그 순간을 맞이해야 한다. 그리고 또 이 땅의 사람들과 잠시, 혹은 영원히 이별해야 할 때가 온다. 잠시라 함은 천국에서 다시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이요, 영원하다 함은 천국과 지옥의 심판으로 영생과 영벌이 나누어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죽음의 순간에 가장 염원하고, 또 가장 큰 복은 뭐니 뭐니 해도 우리가 소망하는 천국, 우리 아버지가 계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가 기다리고 계시는 그 나라에 들어가는 것 아니겠나. 그 외 다른 것들은 어찌 되든지 전혀 상관없다.
우리는 그렇게 가을을 벗고 새봄을 입는 길가의 가로수들처럼, 언젠가 우리 인생의 가을을 지나면 우리 육신을 벗고 썩지 않을 새로운 몸으로 그 나라에 들어갈 것이다. 영원한 봄, 영원한 안식, 무엇보다 꿈에도 그리던 예수님을 만나고 먼저 간 믿음의 가족들과 재회하게 될 것이다. 그 장차의 영광스러운 날들을 기대하고 소망하며 우리 오늘을 기쁨으로 이겨내자. 가장 가치 있는 것을 소유한 자만이 기대할 수 있는 그날이다. 그래서 오늘 잠깐의 이별도 아름다울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