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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75호 목차 › 세상을 보는 창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1175호 · 2022-11-13
겨자씨만 한 믿음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이태주 시인의 ‘풀꽃’이라는 시다.

풀꽃은 너무 보잘것없다. 대단한 자태를 지니고 있지 않다. 매력적인 향기도 없다. 그러나 발을 멈추고 자세히 보면 그렇게 사랑스러울 수가 없다. 장미처럼 화려하지 않지만 그 안에 아름다움이 있다. 오래 들여다볼수록 예쁘고 사랑스럽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그런 거 같다. 우리가 무슨 볼품이 있나. 이리 둘러보고 저리 둘러봐도 우리가 잘난 게 뭐가 있나. 그러나 하나님은 당신의 시선을 우리에게 두시고 바라보시며,

‘예쁘네, 사랑스럽네.’ 하신다. 정말 보잘것없고, 매번 씻겨놓아도 죄 구덩이에서 노는 우리를 보시고도 예쁘다신다. 사랑한다 하신다.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이요, 인내다.

오래 보시는 거다. 참고 보시는 거다. 베드로는 “또 우리 주의 오래 참으심이 구원이 될 줄로 여기라”(벧후3:15)고 이야기하였고, 바울도 “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먼저 일체 오래 참으심을 보이사 후에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딤전1:16)고 말했다.

내 옆에 있는 누군가도 자세히 보면, 오래 보면 예쁘고 사랑스럽다. 성미에 안 맞는 자가 있어도, 내 성에 차지 않는 자가 있어도 당장 화를 내기보다는 오래 보면 그 안에 예쁨이 보인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그렇게 하시고 계신 것처럼 우리도 누군가를 자세히 보고, 오래 참고 사랑하면 정죄할 자도, 미워할 자도 없이 다 예쁘고 사랑스러우리라.

김성일 집사

cre8tor@naver.com

낮은 울타리

주 안에 실패란 없다

최근 친구와 함께 직업 상담을 하러 갔습니다. 자신의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고 있는 친구가 조언을 구하고자 찾아간 것인데요. 상담 선생님은 친구의 이야기를 들은 후 나이와 실력을 고려했을 때 그 분야에서 성공하기엔 힘들 것 같다는 결론을 주셨습니다.

그날 집으로 돌아가 아버지께 이 이야기를 했더니 아버지는 제 이야기를 들으시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지금은 성공하지 못한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길에는 실패가 없어.’ 그러면서 한마디 덧붙이셨습니다. ‘아빠도 너희 엄마의 기도로 이렇게 잘 되었잖니.’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길에는 실패가 없다니, 그 문장이 마음속 깊이 새겨졌습니다. 실제로 아빠는 운동선수를 하시다가 직장인이 되셨고, 직장인에서 자영업을 하셨다가 다시 그만두시게 되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실패’처럼 보이는 순간이 참 많았습니다. 운동선수를 그만두었을 때, 직장을 그만두어야 했을 때, 장사가 힘들 때….

하지만 하나님이 아빠의 삶을 주관하시니 그 모든 실패가 경험이 되었고, 결국 지금의 멋진 사업가가 되게 하셨습니다. 총회장 목사님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단이라고 제명당하셨을 때 사람들은 단편적으로만 보고 목사님의 목회는 실패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목사님은 오히려 전 세계에서 쓰임 받으시며 하나님께 가장 인정받는 ‘성공한’ 목회자가 되셨습니다.

하나님 안에서 실패란 있을 수 없습니다. 비록 지금 나의 상황이 실패한 것처럼 보이고 막막해 보여도, 결국 이 길 또한 하나님의 계획 안에 있는 것이라면 저희는 최고의 성공으로 가는 그 길 가운데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은 주님이 일하시는 삶입니다. 내가 지칠 때도 주님은 계속 일하시고, 내가 막막할 때도 주님은 이미 모든 계획을 마련해놓으셨습니다. 눈앞에 놓인 상황과 사람의 말에 낙심하고 슬퍼하지 마시고 나를 인도하는 주님을 생각해봅시다. 그리고 더욱 담대하게 도전하고 나아갑시다. 주님과 동행하는 크리스천에게 실패란 없습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잠16:9).

장수정

부르심의 소망

내 백성을 위로하라

두 줄로 나누어졌다. 모든 사람이 두 편으로 나뉜다. 어린아이가 노쇠한 할머니를 찾아서 울부짖는다. 남편이 공포에 질린 아내 곁에 서 있기 위해 애쓰고 있다. 눈이 혼몽하다.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건강한 사람은 오른쪽 줄에 세워진다.

“아우슈비츠(Auschwitz)에 온 것을 환영하오, 친구여.”

왼쪽 줄에 세워진 사람들은 도착한 지 1시간도 되지 않아 가스실로 보내어져 다 시체가 되었다. 인간의 무리가 한꺼번에 학살되어 거대한 불구덩이 속으로 집어 던져진다. 오른쪽 줄에 있는 사람들은 어떤 저항도 하지 못한 채 그 죽음을 지켜봐야 했다. 그러나 본격적인 고통은 이제부터다. 이들은 여전히 사망 대기자였으며, 서너 달 동안 더 살아서 수용소가 제공하는 모든 공포를, 지쳐서 죽기 전까지는 다 받아내고 견뎌내야 했다. 온몸은 피가 흐르는 상처투성이였다. 몸은 굶주림으로 말라비틀어져 있었으며 눈은 퀭하니 들어가 있었고 항상 정신착란자처럼 기괴한 신음소리를 내고 있었다. 때로는 그 몸을 이끌고 눈 덮인 벌판을 가로질러 탈출을 감행하기도 했다. 훈련된 개들이 추격해와서 뼈만 남은 그의 몸을 물어서 쓰러뜨리고, 이가 그 시체를 갉아먹을 때가 되어서야 그를 구원하는 시간, 곧 죽음의 시간이 다가왔다.

수용소에 남은 이들은 새벽 3시부터 7시까지 추위에 떨면서 점호를 받아야 한다. 그런 다음 일하러 나가야 한다. 몇 주건 몇 달이건 더 이상 일할 수 없을 때까지. 그런 다음 샤워할 시간이 돌아온다. 그러나 물이 말라빠진 몸을 적시는 대신 독가스가 폐로 들어오고, 몇 시간 후면 재가 된다.

나치의 유대인 학살이 한창일 때 폴란드 유대 랍비인 바이스만델은 로마교황청에 ‘무고한 유대인, 특히 어린이들을 구해달라.’는 편지를 썼습니다. 그의 간구는 절규에 가까운 호소였습니다. 그러나 그가 교황청으로부터 받은 답장은 “이 세상에 무고한 유대인 어린이의 피라는 것은 없다. 모든 유대인의 피는 죄악된 피다. 당신들은 죽어야 한다.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은 죄 때문에 당신들은 이런 형벌을 받는 것이다.”입니다. 학살당한 어린아이들은 유대인 600만 명 중 150만 명이었습니다.

종교개혁을 한 마틴 루터(1483~1546)는 이라는 책을 통해 ‘유대인들은 진정 거짓말쟁이요, 피에 굶주린 개떼들이다. 저들은 자기들의 그 끝없는 탐욕을 채울 수만 있다면 언제든 사악하게도 성서를 자기들 멋대로 왜곡한다. 저들은 우리의 돈과 재물을 모조리 움켜쥐고 자기들이 유배생활을 하고 있다는 이 땅에서 주인 노릇을 하고 있다. 그러므로 그들의 집을 다 파괴하고 학교와 회당을 불태우고 탈무드와 기도서를 모두 압수하고  이 나라에서 쫓아내라.’고 썼는데, (이 책에 대해 가톨릭의 모함이라거나 루터의 건강 악화, 딸의 죽음 등의 문제로 루터가 균형 잡힌 판단을 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학자들의 의견도 있습니다만) 주목해야 할 사실은 400여 년이 지난 후에 히틀러(1889~1945)가 이 책을 이용해서 국민들을 선동했고, 그 결과가 유대인 대학살로 이어졌습니다.

대학살에서 살아남은 랍비 에브라임는

“내가 받은 큰 충격은 선량한 기독교인 이웃들이 취한 태도 때문이다. 그들 가운데 핍박과 위협을 받는 유대인들을 위해 공개적으로 변호해주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고 고백했습니다.

이로 인해 유대인들은 대학살을 가능하게 한 것이 당시 유럽의 기독교라고 생각하게 되었고, 기독교인과 하나님을 향해 깊은 상처와 원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면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생각은 다릅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세우리라”(렘31:31).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회복을 말씀하시며, “너희 하나님이 가라사대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사40:1)고 하십니다. 전 세계의 기독교인 중 누가 이스라엘 민족을 위로할 수 있을까요…. (계속)

박영신

글꾼의 신앙

하나님이 공력을 밝힐 때

1991년 5월 12일 이초석 목사님으로부터 심방전도사로 임명을 받았다. 구로구가 아닌 노원, 의정부, 동두천 지역이었다. 구로구는 기도처가 있었고 노원, 의정부, 동두천 지역은 기도처도 없이 도봉 기도처에서 분할이 된 것이다.

수요예배를 드리기 위하여 미아리에서 노원으로 가는데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다. 비천한 나를 전도사로 써주심에 감사의 눈물이었다. 이때 하나님께서 말씀을 깨닫게 하셨다.“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함이라”(벧전1:7). 금도 불로 연단하면 없어진다는 말씀이다. 나의 신앙은 교회당 건축하고 좋은 차 타는 장로였는데 불타지 않는 성도들의 영혼을 살리는 일을 하게 하신 것이다.

사람들은 금, 은, 보석으로 집을 지으면 불에 타지 않는 정금 같은 믿음이고, 나무나 풀, 짚으로 집을 지으면 공력을 심판할 때 불에 타는 믿음이라 했었다. 나 역시 돈 많이 벌어서 예배당 지으려고 했으니 공력을 밝힐 때 교회당은 불에 타버리고 불 가운데 겨우 구원을 얻게 됨을 깨닫게 하셨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칠 배나 뜨거운 풀무 불에 던져졌어도 머리털 하나 상하지 않게 하신 하나님이다(단3:24~27). 하나님은 나의 공력을 헛되지 않게 하시려고 이초석 목사님을 통해 목회자의 길을 가게 하신 것이다.

노원구 김지숙 조장의 아파트에서 수요예배를 드렸다. 그리고 ‘기도처 헌금하자,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하겠다.’고 하니 좋아들 했다. 보증금 천만 원에 월세를 내는 곳에 기도처를 세웠다. 성도들의 헌금에 더해 700만 원을 헌금하여 기도처를 세웠다. 그런데 의정부 성도들이

‘우리는 데리고 온 자식이냐’며 의정부에도 기도처를 세워달라 했다. 의정부 성도들의 사정을 잘 알았기에 보증금은 내가 담당할 테니 내부 시설은 알아서 하라고 했다. 성도들이 보증금 500만 원에 월세 내는 곳을 찾았다고 기뻐했다. 노원에서는 수요예배를 하고 의정부에서는 목요예배를 했다. 하나님이 나의 공력을 헛되지 않게 하시려고 사업장을 정리하게 하시고 영혼을 살리는 길로 인도하셨다.

이승효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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