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수 있단 생각으로 바꾸면 미래가 보인다(막9:23)
인생은 운명이 아닙니다. 인생은 내가 만드는 작품입니다.
초등학교 시절 미술 시간에 진흙으로 만들기 해보셨지요? 그런데 무작정 진흙을 떼기부터 합니까? 아니죠? 뭘 만들까 생각한 후에 진흙을 뗍니다. 그리고 그 생각한 대로 고양이도 만들고, 강아지도 만들고, 집도 만듭니다. 미술 시간이 끝날 때 선생님께 내미는 작품은 내 생각의 결과물입니다.
인생도 그렇습니다. ‘인생은 팔자대로 사는 거야.’ 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아닙니다. 인생은 타고나는 운명이 아니라 내가 만드는 겁니다. 뭘로요? 생각입니다. 곧 지금의 나는 과거 내 생각의 결과물이요, 미래는 지금 내 생각의 결과물인 것입니다. 이해가 잘 안 되시나요? 저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저는 목회 초기에 세계를 교구화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세계교구(世界敎區)’라는 글씨를 써서 사무실에 걸었습니다. 광명 철산리라는 구석진 곳에서 이런 생각을 한 겁니다. 다들 비웃었지요. 그러나 여러분! 여러분들은 영상을 통해 과거 제 생각의 결과물이 어떤지 보고 있습니다. 전 세계로 나가 복음을 전하는 제 모습을 영상으로 수없이 보셨습니다.
지금 저는 늘 평화통일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우리 후손들에게 아름다운 금수강산을 물려줘야 한다는 생각, 그리고 통일이 되면 대동강가에서 찬양하고, 김일성 광장을 평화의 광장으로 만들어 복음을 전하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꿈같은 소리 하시네.’ 하셔도 좋습니다. 우리 손녀가 어릴 때 저와 함께 화분에 수박씨를 심었습니다. 제가 “이제 여기서 싹이 나고 수박이 열릴 거야.”라고 손녀에게 말했더니, 안 믿더라고요. 그런데 물을 열심히 주었더니 어느 날 싹이 났어요. 그리고 마침내 아주 조그마한 수박이 열렸어요. 그제야 손녀가 “할아버지, 진짜로 수박이 열리네요.” 합디다. 머지않아 현재 제 생각의 결과물을 우리는 함께 보고 누리게 될 것입니다. 기대하세요.
여러분, 보이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에서부터 출발합니다. ‘새처럼 날아볼까?’ 하는 생각이 비행기를 만들었고요. ‘세상을 밝혀보리라’는 생각이 전기를 개발했고요, ‘세상을 하나로 묶어보리라’는 생각이 인터넷을 만든 겁니다. 지금 보이는 모든 것은 어떤 사람의 보이지 않는 생각의 결과물입니다. 제 지인은 지금 화성에 발전소를 짓고 있습니다. 경기도 화성이 아니라 우주 화성에 발전소를 짓고 있습니다. 이 또한 생각의 결과입니다.
궁상맞은 당신, 되는 일이 없는 당신, 실패자라는 오명을 안은 당신의 지금 모습은 과거 당신 생각의 결과물입니다. 늘상 ‘나는 못한다’, ‘나는 안 돼’, ‘내 팔자에’,
‘내 주제에’, 이런 말을 뿌렸기 때문에 이런 결과를 낳은 것입니다. 말은 그냥 나오는 게 아닙니다. 생각에서 말이 나오는 겁니다. 말은 생각이란 주머니 속에 있거든요. 병에 사이다가 있으면 사이다가 나오지 않습니까? 그런데 병에 오줌이 담겨 있으면 오줌이 나오는 겁니다. ‘나는 못 배웠는데’, ‘나는 몸이 약해서’, ‘나는 배경이 없어’,
‘나는 부모를 잘못 만나서’, 이런 생각에 젖어 있으면요,
‘못한다, 안 된다’라는 말이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말을 바꾸기 전에 생각을 바꿔야 합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쓰실 때 보면, 먼저 생각을 바꾸셨습니다. 창세기 17장에 보면 ‘아브람’을 ‘아브라함’으로 바꾸셨지요? 무자한 아브람이 아니라 열국의 아비라는 이름으로 바꾸어주신 것은 생각을 바꾸신 것입니다. 이름을 바꾸는 것만으로도 부족하여 아브라함을 밤중에 밖으로 이끌어 하늘의 뭇별을 보게 하시며 생각을 완전히 바꾸도록 하셨고(창15:5), 그 생각의 결과로 이삭을 낳고, 결국 열국의 아비가 되게 하셨습니다.
모세도 하나님이 쓰실 때 그랬습니다.
‘나는 못한다, 다른 사람 쓰세요.’ 하는 모세의 생각을 바꾸기 위해서 하나님은 지팡이가 변하여 뱀이 되게 하고, 다시 지팡이가 되게 하셨고, 열 가지 재앙으로 하나님이 모세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맞습니다. 우리는 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지 않았다면 우리에게 생각의 전환은 있을 수 없었습니다. 어차피 우리는 수족관의 상어 꼴이었으니까요. 오래전에 오키나와에 있는 세계 최대의 아쿠아리움에 간 적이 있습니다. 그 안에 보니까 상어가 조그마한 물고기랑 같이 헤엄치며 놀고 있습디다. 잡아먹을 생각을 않고요. 왜 그런가 그 이유를 들어보니, 이 상어를 며칠간 굶긴답니다. 그러면 물고기를 마구 잡아먹으려 할 거 아닙니까? 그런데 조련사가 상어와 물고기 떼 사이에 보이지 않는 투명한 벽을 친답니다. 상어가 그걸 모르고 배가 고파서 물고기 떼에게로 달려들려고 하면 벽에 딱 부딪치는 겁니다. 이걸 수차례 반복하다 보면 상어는 ‘아, 안 되는구나.’라고 생각하게 되어 벽이 사라져도 절대로 물고기를 잡아먹지 않는답니다.
마귀란 놈이 우리에게 보이지 않는 벽을 설치해놓고는 안 되게 하고, 실패하게 해서 아예 ‘나는 못하는 존재’, ‘해도 안 되는 존재’로 인식하게 해서 운명론이라 믿게 하고, 회의적인 자가 되게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오셔서 그 벽을 치우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막9:23). ‘생각을 바꿔! 할 수 있어, 내가 너와 함께 하잖아.’라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데 뭘 못합니까? 하나님이 내 편이신데 안 되는 게 어디 있습니까? 그건 지갑에 돈을 잔뜩 가지고 있으면서 굶어 죽는 꼴이 아닙니까?
사업한다고 제게 와서 기도 실컷 받고는 나가면서, “그런데 목사님, 안 되면 어떡하죠?” 그러는 사람이 있습니다. 정말 한 대 때려주고 싶습니다. “목사님, 너무 잘 되면 어떻게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까요?” 그래야죠. 제발 생각을 바꾸세요. 모르드개가 에스더에게 ‘하나님이 이때를 위해 너를 준비하셨다’라고 생각을 바꾸어줬기에 이스라엘 민족에게 부림절의 축복이 찾아온 것입니다.
뿌리가 썩은 나무에겐 물을 주면 안 됩니다. 더 썩습니다. 생각이 썩은 자에겐 축복은 독이 됩니다. 먼저 썩은 생각, 잘못된 생각을 잘라내야 합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3:14)는 생각이 잉태되어야 밝은 미래가 있습니다.
다시 초등학교 시절 미술 시간으로 넘어가 볼까요? 진흙은 조금 떼면 절대 큰 것을 만들 수 없습니다. 적게 뗀 진흙으로는 절대 큰 호랑이를 만들 수 없습니다. 호랑이 비슷한 고양이밖에 만들 수 없습니다. 진흙을 넉넉히 떼야지 큰 작품이 나옵니다. 큰 생각을 하세요. 성경에는 “네 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시81:10) 하셨고,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니라”(요14:12)고도 하셨습니다. 생각이 커야 큰일을 합니다. 생각이 커야 인물이 됩니다. 사람의 생각만큼 생각하지 말고, 하나님의 생각을 가지세요.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와 다를 뿐 아니라 우리 생각보다 훨씬 높고 깊고 넓습니다(사55:8~9).
아프면 가족이나 친구가 병문안은 오지만, 수술할 때는 혼자 수술실에 들어갑니다. 생각을 바꾸는 수술은 혼자 해야 합니다. 생각의 주인은 나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잘못된 생각, 부정적인 생각, 편협한 생각을 잘라내고 긍정적인 생각, 미래지향적인 생각, 창조적인 생각, 큰 생각으로 바꾸세요. 그 생각이 미래에 멋진 작품을 만들어낼 것입니다. 생각이 결과입니다
(렘6:19). 그러니까 12년 동안 혈루증을 앓던 여인처럼 적극적인 생각으로 전환해야 하고, ‘가나안은 우리의 밥이다’라고 했던 여호수아와 갈렙처럼 긍정적인 사고로의 전환하고, 중풍병자를 들것에 들고 와서 지붕을 뚫었던 네 명의 친구처럼 당신도 창조적인 생각으로 바꾸세요. 그래야 멋진 인생의 작품이 탄생합니다. 인생의 걸작, 대작 하나 만들어봅시다.
인생을 어느 방향으로 끌고 갈 것이냐? 생각이란 자동차의 핸들과 같아서 돌리는 대로 차가 움직이듯, 당신의 생각에 따라 당신의 육체가, 당신의 미래가 방향을 틀게 됩니다. 그러니 어떤 생각을 하시겠습니까? 할렐루야!
도토리 씨 안에는
참나무가 들어있다
생각보다
무서운 파괴력은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