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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이 십자가 위에서 본 사람들

1150호 · 2022-05-22
세상을 보는 창

주님이 십자가 위에서 본 사람들

19세기 프랑스 화가 제임스 티소가 그린 그림은 주님의 눈으로 십자가 밑에서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사람들을 보았다는 점에서 아주 독보적이다. 그림에는 로마 백부장과 군인들, 유대인 종교 지도자들, 군중들, 그리고 예수님을 사랑한 여인들이 나온다.

십자가에 달려 계시던 6시간 동안 주님은 이들 한 사람, 한 사람을 어떤 눈으로 보셨을까? 예수님의 사랑과 용서는 십자가 밑에 있던 사람들 하나 하나에게 각자 다른 방식으로 임했으며, 십자가 후 그들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먼저 로마 백부장과 군인들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들이었으며, 그들의 손에는 칼이 있었고, 제국의 권세가 있었기에 오만방자했다. 그러나 예수님의 죽음 직후 백부장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했다.

또한 가장 독한 말로 예수님을 공격한 종교 지도자들도 십자가의 능력 앞에 무릎 꿇어 복음을 받아들인 예루살렘의 허다한 무리가 섞여 있었다.

종교 지도자들의 하수인이 되어 조롱하던 군중들은 어떠했을까? 악한 이들에게 선동되어 예수님을 독하게 비방했던 그들은 십자가 사건 직후에 가슴을 치며 회개하고, 이후 오순절 다락방에서 120문도가 함께 기도할 때 성령이 임했으며, 교회가 탄생했다. 한편 진심으로 주님의 죽음을 애통해하는 여인들이 있었다. 막달라 마리아를 비롯한 그들은 주님의 십자가 앞까지 울면서 주님을 따라왔고, 주위 로마 군인들과 종교 지도자들의 따가운 눈초리도 상관하지 않았다.

예수님의 은혜를 깊이 체험한 사람들은 배신하지 않는다. 환난이 와도 도망가지 않고 끝까지 예수님 곁에 머무른다. 십자가의 용서의 힘이 그들을 변화시킨 것이다. 지금 저와 여러분을 예수님은 어떤 눈으로 바라보고 계실까?

이정금 전도사

jungkm@nate.com

낮은 울타리

주님을 신뢰하라

요즘 즐겨보는 한 예능프로그램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여러 아이돌이 나와 경연을 하는 프로그램인데, 지난 경연 결과에 따라 다음 경연곡을 순서대로 고를 수 있는 룰을 가지고 있습니다.

당연히 지난 경연에서 꼴찌를 한 팀은 원하는 곡에서 모두 밀려나 가장 하고 싶지 않았던 곡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팀원들은 상실감에 빠졌습니다.

그렇게 연습을 하고 있는데, 그 곡의 안무 선생님이 연습실에 등장했습니다. 그 안무 선생님은 연습실의 분위기를 바로 파악하고 그 팀원들을 모아 마음을 다잡을 수 있도록 열정을 불어넣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곡을 맡은 안무가들보다도 많은 시간과 열정을 쏟으며 세세한 것 하나하나까지 알려주었습니다. 그 결과 꼴지였던 이 팀은 정말 생각지도 못하게 가장 높은 퀄리티로 중간평가에서 1위를 하게 되었습니다. 위기의 순간에 생각지도 못하게 그 안무 선생님을 만나 상황이 반전된 것입니다.

저는 이 프로그램을 보면서 고난의 시간 속 항상 반전을 숨겨 놓으신 주님이 떠올랐습니다. 삶을 살다 보면 이렇게 벼랑 끝으로 몰릴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벼랑 끝에서 잡고 있던 희망의 끈도 끊어질 때가 있습니다. 그때 저희는 쉽게 상실감에 빠지곤 합니다. 하지만 우리 삶은 분명 주님의 계획안에 있고 그 계획안에는 날 향한 주님의 사랑으로 가득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상황에서도 내가 예상하지 못한 기적과 반전은 분명히 일어납니다.

지금 내 눈 앞에 펼쳐진 상황이 너무 벅차 주님을 바라보기 힘드십니까? 나보다도 나를 더 사랑하시는 주님을 신뢰해야 합니다. 물에 빠졌을 때 살기 위해 막 발버둥 치면 오히려 더 수면 아래로 가라앉게 됩니다. 내 몸이 물에서 뜬다는 것을 믿고 힘을 쭉 뺀 후 움직일 때 비로소 우리는 수면 위로 떠 오를 수 있습니다. 이렇듯 고난의 시간에서도 하나님이 숨겨두신 반전과 기적을 믿고 주님을 신뢰할 때 우리는 그 고난에서 벗어나 평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주님은 생각지도 못한 곳에 나를 구할 길을 마련해 놓으셨습니다. 나의 문제보다, 이 세상에 있는 그 어떤 것보다 크신 하나님을 신뢰하며 인내합시다.

장수정

동행하는 삶

아이를 믿어주는 마음

얼마 전 아이가 사소한 일로 거짓말을 했다. 너무 놀라 다시는 그러지 못하도록 단단히 야단을 쳤다. 그리고 며칠이 지난 후 또다시 거짓말을 하는 듯한 상황이 생겼고, 나는 아이를 믿어주지 않았다. 그런데 지나고 보니 아이의 말이 맞았다.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 사과를 하고, 이후 많은 생각을 하였다. 그러다 기도하며 다시금 깨달았다. 엄마는 아이를 믿어줘야 한다는 것이다. 아이와 일상생활 중 많은 상황들이 생기고 그럴 때마다 사실 별일 아닌 것들로 마찰이 생긴다. 아이들은 그런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거짓말을 하기도 한다. 그럴 때 엄마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나의 중학교 시절이 떠올랐다. 공부도 안 하고 교회도 주일에만 겨우 나가는 그런 학생이었다. 어린 시절의 성령 충만함은 사라지고 사춘기가 한창이었을 때였다. 시험 기간이 지나고 성적표가 나왔는데 학교에서 부모님 확인을 받아오라고 했다. 엄마에게 성적표를 내밀고 나는 바로 도망을 갔다. 혼날 것이 무서워서였다. 한참 후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집에 들어가니 엄마가 혼을 내지도 않으시고 차분히 말씀하셨다. 엄마가 기도를 하시는 중에 내가 책상에 앉아 머리에 띠를 두르고 열심히 공부하는 모습을 하나님께서 보여주셨다는 것이었다. 솔직히 그 이야기를 듣고 믿기지도 않았고 웃어넘겼다. 그럴 리가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그런 일이 있은 후 고등학교를 진학하게 되었고 첫 시험을 보았는데 공부했던 것보다 성적이 잘 나와서 성취감이 생겼다. 동기부여가 되어 공부를 더욱 열심히 하게 되었고 교실에서도 맨 앞에 앉아 선생님 말씀을 들었다. 시험 기간이 되어 밤늦게까지 공부하고 아침에 새벽같이 일어나 학교에 가서 시험 볼 준비를 하고 있는 와중에 갑자기 엄마의 말씀이 떠올랐다. 내가 책상에 앉아 머리에 띠를 두르고 공부하는 모습을 하나님께서 보여주셨다는 그 말씀이….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정말이었구나. 엄마의 기도로 이렇게 된 것이었구나.’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그래서 기도하며 더욱 열심히 공부했고 선생님들도 그런 내 모습을 예쁘게 보셨는지 책 사이에 문화상품권도 넣어주시고 문제집도 챙겨주시고 후에는 장학금까지 받게 되었다. 처음으로 1등을 했을 때 ‘하나님 감사합니다!’라는 말이 입에서 나도 모르게 터져 나왔다. 정말 감사했다. 생각지도 못한 축복이 나에게도 왔기 때문이다. 졸업할 때는 우등상, 개근상, 공로상, 서울시에서 모범이 되는 학생들에게 주는 표창장까지 받게 되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였고, 엄마의 기도와 딸을 믿어주는 마음에서 얻게 된 결과이리라.

이제는 나도 두 아이를 키우는 엄마가 되었다. 우리 엄마처럼 아이를 위해 기도해 주고, 아이를 믿어주며 힘을 실어주는 엄마가 되어야겠다 깨달았다. 아이를 믿어줘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러지 못했던 나를 반성하고 회개하며 앞으로는 사랑하는 아이들을 위해, 하나님이 주신 선물들을 위해 따뜻한 마음으로 안아주고 믿어주는 엄마로 살아야지 다짐해본다.

정효경 집사

happy_holly@naver.com

GOOD NEWS

길의 선택에 따라서 목적지가 확연하게 달라집니다. 그래서 어떤 길을 선택하느냐가 굉장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아는 길도 물어 가라’와 ‘돌다리도 두들겨보고 건너라’는 속담처럼 매사 점검하는 것이 필요하지만, 특히 영생에 관련된 사항은 ‘내가 바른 길로 잘 가고 있나?’ 날마다 점검해야 합니다.

종교적 열심이 있다고 천국 가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한길 예수님 외에 다른 길은 없습니다. 예수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예수님을 믿지 않고는 하나님 나라에 갈 수 없습니다.

얼마 전 등산을 갔다가 내려오는 길에 잠깐 생각을 빼앗겨 등산로를 벗어나 버렸습니다. 길을 찾는다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다보니 해는 저물어가고 가는 곳마다 절벽만 나타났습니다. 가던 길을 멈추고 스마트폰의 GPS지도를 켜니 내가 있는 위치와 등산로 표기가 뜨기에 목표를 정하고 가다 보니 등산로를 다시 만나게 되었습니다. 살아가다가 길을 잃어버리게 되면 인생의 지도인 성경을 보고 다시 궤도수정을 해서 길을 찾아야 합니다.

세상에는 우리를 유혹하는 것들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돈, 명예, 쾌락 등, 달콤한 유혹에 빠져서 예수님과 멀어지면 그 결과는 불을 보듯 뻔합니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길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와 동행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가 복 받는 길이고 영생복락의 천국 가는 길입니다.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행4:12).

상화평 목사

sanghwapyung@hanmail.net

나도 건강할 수 있다

오미크론 후유증 종류와 대처방법

오미크론이 대유행 후 조금씩 가라앉고 있습니다. 주변에 보면 오미크론 바이러스에 많은 사람들이 걸렸고 국가 방역체계도 심각도를 낮추어 가며 일상생활로 복귀를 하고 있습니다.

초기보다 오미크론에 걸렸을 때 대응이 수월해졌으나 오미크론이 회복 후에도 발생하는 여러 후유증에 대해서는 대처가 조금은 더 필요하다고 보여집니다.

오미크론 후유증으로는 개인마다 원래 본인이 약했던 신체 부분이 다시 증상이 악화되는 경향성을 보입니다. 폐가 약한 체질은 마른기침이 오래 가거나 흉통 및 만성적인 피로가 오거나, 심장이 약한 체질은 심박동수가 늘거나 우울증 및 수면장애가 생기고, 위장이 약한 체질은 소화력이 떨어지고 입맛이 없거나 떨어집니다. 간이 약한 체질은 감정기복이 생기거나 어지럼증이나 근육통이 생기고, 장이 약한 체질은 설사가 지속되거나 어지러움을 호소하기도 합니다.

그 중 가장 많이 발병되는 만성피로는 충분한 숙면을 취함에도 계속 졸립니다. 심리적인 의욕이 저하되는 것도 육체의 피로감이 영향을 줍니다. 이때는 체질에 따라서 경옥고, 공진단, 육미지황탕, 홍삼 등이 체력과 면역을 돕는 보약이 도움이 되며, 무리한 운동보다는 가벼운 조깅과 휴식의 시간이 내 몸에 필요합니다.

심리적으로 불안장애나 우울증이 심해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가까운 양방 신경정신과나 한방신경정신과에서 도움을 얻을 수 있습니다. 가벼운 우울증은 진피차나 치자차를 연하게 차처럼 마시면 마음을 가볍게 하는데 도움이 될수 있습니다.

마른기침이 오미크론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발생되는 경우에는 경옥고, 오미자차 등이 도움이 됩니다. 도라지차는 폐가 건조해서 생기는 마른기침에는 효과가 없고 가래가 있는 기침에 도움이 됩니다.

인지장애로 사람이나 사물의 이름이 잘 생각나지 않는 경우에는 손끝 발끝을 볼펜으로 자극을 주거나 석창포를 하루에 4g 정도 차로 마시는 것도 도움이 되며, 새로운 것을 배우고 공부하면서 뇌에 건강한 자극을 주는 것도 필요합니다.

오미크론의 후유증으로 생기는 여러 증상들에 대해서도 잘 관찰하고 극복한다면 이전보다도 더 좋은 몸과 마음의 컨디션으로 회복될 수 있어 보입니다.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마16:26).

Dr. 설재현 집사

신앙에세이

그리움

엄마가 소천하신 지도 어느덧 19년이 지났다. 그런데 여전히 엄마의 빈자리는 너무나도 크다. 남은 가족들에게 힘든 일이 있을 때나 아이가 태어나 커가는 모습을 보는 기쁜 일이 있을 때에도 여전히 엄마가 생각나 마음속 한구석이 아리다. 보고 싶어서, 나중에 천국에서 볼 걸 알지만, 그래도 그리워서 그렇다.

엄마 장례를 치른 직후 교회에서 어느 분이 아버지에게 축하한다는 인사말을 건넸다고 한다. 엄마가 천국에 가신 걸 축하한다는, 그분 나름대로 가히 큰 믿음의 인사말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 당시 얘기를 전해 듣고 마음속에서 울분이 치밀어, 그분에게도 축하할 일이 많이 있으시길 바란다는 답을 전해주고도 싶었다.

때로 우리는 믿음의 사람이란 것을 보여주기 위해 기본적인 예의라는 선을 넘을 때가 있다. 급박한 상황 속에서 한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무슨 방도로 하든지 복음을 전하면서 그 선을 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그 선은 항상 지켜져야 옳다. 보여주기 위한 믿음의 과시로는 덕이 되지 않는다. 품위라는 그릇 속에 예절을 담은 믿음의 사람이 진정 세상의 빛, 산 위에 있는 멋진 동네가 아니겠는가.

엄마가 돌아가셨을 때 들었던 위로의 말 중에 “엄마가 천국에서 너희 세 남매를 위해 늘 기도해 주실 거야.”라는 말이 가장 힘이 되었던 것 같다.

슬퍼하는 마음 자체는 뒤로 물러가 침륜에 빠지는 것이 아니다. 뒤로 물러가는 행동, 즉 하나님 뜻과는 반대 방향으로 취하는 행동을 하나님께서는 기뻐하지 않으신다는 것이다. 슬픔 또한 하나님께서 만드신 감정으로 그 마음을 인정하고, 공감하고, 잘 추스를 수 있게 스스로도 위로해 주어야 삶에서 다시 일어나 전진할 수 있는 힘이 생기지 않을까?

“그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 공급하라”(베드로후서 1:5~7).

박찬영 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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