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내가 말한 대로 된다
2년 반만에 재개된 기도원 춘계산상집회(2022년 5월 9일~12일, 장성 예루살렘기도원)
장성 예루살렘기도원!
얼마나 그리웠던 곳인가. 이렇게 몇 시간이면 달려올 수 있는데, 무려 3년 동안 올 수 없었으니 그 안타까움을 어찌 말로 형용할까.
5월의 기도원은 푸르름이 병풍을 친 듯 둘러 아름다웠고, 코끝에 와 닿는 공기는 달콤하기까지 했다. 하얗고 뾰쪽한 텐트가 대성전 앞 잔디밭을 가득 메워 장관이었고, 중앙공원에는 멋진 야외식당이 만들어져 있었다. 이 모두 얼마 전 천국에 입성한 오치환 장로님의 아이디어요, 작품이다. 우리가 그의 흔적 속에서 슬픔 대신 기쁨으로 찬양하고, 예배드리는 것은 그것이 먼저 간 오 장로님의 뜻이기 때문이다.
4박5일 동안 진행된 춘계산상집회의 첫 예배시간, 한 시간이 넘는 통성기도로 묵은 지경을 엎는 것부터 시작되었다. 코로나로 인해 잠들고, 굳어진 심령을 깨우기 위해서 기도와 찬양이 계속 이어졌다. 9시에 단에 오르신 총회장 목사님은 첫 메시지로 ‘말의 권세’에 대해 설파하셨다.
“창세기 1장에는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창1:3),
‘하나님이 가라사대 물 가운데 궁창이 있어 물과 물로 나뉘게 하리라 하시고… 그대로 되니라’(창1:6~7)고 말씀하고 있다. ‘가라사대’는 ‘말씀하시되’라는 뜻이다. 곧 하나님이 천지를 말씀으로 창조하셨다는 것이다.
말에는 이렇듯 권세가 있다. 하나님의 말씀에만 권세가 있느냐?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우리의 말에도 권세가 있다(창1:27). 예수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마16:19). 우리의 말로 인생을 묶을 수도, 풀 수도 있다는 것이다. 가나안을 탐지하러 간 12명의 정탐꾼들 중에 10명은 ‘가나안 사람들에 비하면 자신들은 메뚜기와 같다’고 말했다. 그 말대로 그들은 메뚜기 신세가 되어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그들은 우리의 밥이다’라고 뿌려 그들을 먹어치우고 가나안에 입성했다.
내 인생은 내 생각 속의 말이 만드는 작품이다. 다윗은 처참한 지경에서도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시23:6)라고 말했더니 어두움의 시절이 가고 그는 말년까지 부하고 존귀하게 살았다.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달렸던 두 강도를 생각해보라. 말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 바로 알 수 있다. 한 강도는 단 한 마디,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눅23:42)로 구원을 얻었다. 그러나 한 강도도 말 한 마디,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눅23:39)라고 해서 지옥에 떨어졌다.
말로 인생길이 갈린다. 축복과 저주, 행복과 불행, 천국과 지옥이 다 말에 달려 있다. 그러니 터진 입이라고 아무 말이나 하지 말라. 혹시 그동안 말을 잘못했는가? 그렇다면 지우개로 지워라. 예수의 보혈로 지워서 그 열매를 맺지 못하게 하라. 하나님은 우리가 말한 대로 이뤄주시니(민14:28) ‘나는 잘 된다.’, ‘나는 행복하다.’, ‘나는 건강하다.’, ‘내가 손대는 것마다 잘 된다.’, ‘우리 남편은 나만 사랑한다.’ 이렇게 뿌려라. 인천의 어느 장로 부부는 ‘부부가 왜 싸우는지 모르겠다.’ 면서 기도원에 오는 동안에도 22번이나 사랑한다고 말했단다. 말이 가정을 천국으로, 삶을 천국으로 만들 수 있다. 생각이 결과다(렘6:19). 다시 말하지만, 가시나무를 심고 절대 아름다운 꽃을 거둘 수 없음을 알라.”
예배 후, 목사님은 병자들을 단에 올려 일일이 안수하셨다. 하나님의 영광이 기도원에 가득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