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의와 사랑
소설 ‘레미제라블’에서 장발장은 배가 너무 고파 빵을 훔치다 주인에게 들켜 경찰에 고소되었고, 재판정에 서게 됩니다. 담당 판사는 장발장에게 벌을 주는 것이 판사로서 해야 할 공의로운 일이었지만, 소년의 딱한 사정을 감안하여 빵 값을 빵집 주인에게 대신 지불하고 고소를 취하하도록 만든 후 소년을 집으로 돌려보냈습니다.
사람들은 공의와 사랑을 적절하게 선택하는 것을 지혜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 인간에 대해 공의와 사랑을 어떻게 선택하시고 실행하실까요? 하나님은 사람의 지혜로는 알 수 없는 하나님의 성품으로 그분의 사랑, 용서, 그리고 공의로움을 실행하십니다.
아담과 하와가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 죄를 짓자 하나님은 에덴동산에서 쫓아내고 죄에 대한 대가로 아담에게는 평생 일하도록 하였고, 하와에게는 출산의 고통을 갖도록 하였습니다. 왜 하나님은 무한하신 능력으로 인간을 죄악에 빠트린 사탄을 일시에 멸하시고 당신이 창조하신 인간을 편안히 계속 살도록 하지 않으셨을까요? ‘공의롭다’함은 모든 대상에 대해 동일한 잣대를 가지고 행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탄을 멸하시려 하신다면 인간도 멸하셔야 합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하나님이 금지한 선악과를 따먹은 죄, 즉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한 죄를 저질렀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간을 멸하시지 않기 위해 사탄을 일시에 멸하시지 못하는 하나님의 공의로움은 우리 인간에 대한 깊은 사랑을 기반으로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사랑의 절정은 예수님을 통해 사탄의 손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하시고 영원한 생명의 길을 열어주신 것입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그들을 로마의 압제로부터 구원해줄 메시아가 예수님이라고 생각하였는데, 연약한 모습으로 십자가에 못박히시는 현실 앞에 도저히 예수님을 메시아로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헬라인들은 십자가에서의 죽음을 피할 수 있음에도 피하지 않은 예수님이 지혜롭지 못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방법은 달랐습니다. 사탄의 세력을 멸하기 위해서는 사탄과 함께 인간도 같이 멸해야하기 때문에 독생자 예수님을 우리의 죽음을 대신하는 희생양으로 만드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은 인간을 창조하신 원래의 목적대로, 죄에 빠진 우리를 구원하시고 우리와 같이 영생하시고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공의를 실행함에 있어 용의주도하고 신실하십니다. 우리 안에서 살아서 역사하시며, 우리의 모든 문제에 대해 해답을 주시는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의 메시지가 바로 복음입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달하는 역할을 충실히 하고,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가족사랑, 직장 동료사랑, 소외된 이웃사랑으로 실천하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에 대한 우리의 신실한 믿음의 자세가 아닐까요? 하나님은 공의와 사랑이십니다.
할렐루야!
이관섭 장로
kslee@krri.re.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