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뜻을 이루자
잔칫집보다 초상집에 가는 게 낫다는 지혜자의 말이 왜 옳은지 나는 기도원에 있는 내 가묘 앞에 서면 알게 된다.
기도원에 가면 가장 먼저 찾는 곳이 내 가묘다. 그 앞에 서면 번번이 인생사 생각이 깊어지고, 나를 반추하게 되니 참 묘하다. ‘이곳에 묻혔을 때 나는 어떤 목사로, 어떤 사람으로 기억될까? 하나님은 나를 어떻게 평가하실까? 나는 한다고 하고 있지만, 주님이 보실 때 흡족하실 만한 삶을 살고 있나? 나는 비운다고 비우고 있지만, 혹여 실오라기만큼이라도 세상에 미련이 있거나 소유욕에 사로잡혀 있지는 않나? 나는 사랑한다고 하고 있지만 아직 미흡하여 내 성도들이 애정 결핍은 아닐까?’ 그리고 다짐한다. ‘그래, 초석아! 더욱 주의 일에 힘쓰고, 더욱 성도들을 사랑하자! 너는 할 수 있어.’
사도 바울 말대로 세상적으로 보면 나는 참 불쌍한 자다. 그럼에도 내가 가장 행복한 자요, 부유한 자로 자부하는 것은 그날 주님이 주실 상과 면류관, 열 고을의 왕권, 칭찬이 예비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명예롭고 근사한 타이틀이 아닌 ‘주의 종’으로,
‘예수의 노예’로 나는 만족, 감사하며 산다.
몇 년 전, 우리 교단의 어느 목사가 암에 걸렸었다. 나는 그에게 “죽음을 두려워 말고, 죽음 다음에 심판을 두려워하라. 네 뜻을 이루지 못한 것에 애달파 하지 말고, 주의 뜻을 다 이루지 못한 것을 아쉬워해라. 그리고 네 마음에 잡초, 곧 네 속의 쓴 뿌리를 뽑아버려라. 그러면 하나님이 놀라운 일을 너에게 행하실 것이다.”라고 말해줬다. 그는 아버지처럼 가르쳐줘서 감사하다고 했고, 그 후 병과의 투쟁이 아니라 자신과의 투쟁에서 이겨 완치되는 놀라운 역사를 맛보았다. 그는 지금 오직 하나님 뜻을 이루는데 총력을 기울이며 목회에 전념하고 있다.
누구나 시한부 인생이다. 예외 없이 유통기한의 삶을 산다. 성경은 한 번 죽는 것은 정한 이치라고 하셨다. 주어진 그 시간 동안 나는 무엇을 위해 살고, 어떻게 살 것인가 깊이 생각해야 한다.
내게 주신 크고 작은 사명에 부도내는 일이 없도록 마음과 정성과 뜻을 다하자. 그래서 그날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는 칭찬을 받자. 그것이 삶의 목표요, 희망이요 소망이 되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