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생각과 하나님 생각은 다르다(잠16:9)
살아보니 인생길이 꽃길입디까? 아니면 야곱처럼 광야에서 돌베개를 베고 자야 하는 고달프고 힘든 길입디까? 아마도 대부분이 후자에 동조하실 것입니다. 저도 후자 쪽입니다. 인생길은 결코 꽃길이 아닙디다. 인생길은 이리 저리 덜커덩거리면서 가는 비포장도로에 가깝습디다. 그래서 어른들은 인생길을 돌아보며 ‘산전수전(山戰水戰) 다 겪었다’라고 했나 봅니다.
그렇다면 예수를 믿고 난 뒤에는 달라졌나요? 인생길이 마냥 꽃길입디까? No! 꼭 그렇지 않습디다. 일평생 하나님과 동행한 야곱의 고백을 통해서도 인생이 고달픈 것임을 알게 됩니다.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일백 삼십년이니이다 나의 연세가 얼마 못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세월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창47:9). 이는 야곱이 애굽의 총리대신이 된 아들 요셉을 만난 후, 애굽의 바로 앞에 서서 자신의 인생을 회고한 내용입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하실 만큼 야곱을 사랑하신 하나님이 함께 하는 삶이었는데, 왜 야곱의 삶은 험악했을까요? 하나님의 사랑이 식어서? 하나님이 능력이 없으셔서? 아닙니다. 그 이유는 이렇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사55:8~9).
야곱은 말 그대로 험악한 삶을 살았습니다. 형을 피해 도망자가 되어야 했고, 외삼촌 집에서 노동력을 착취당하면서 일해야 했고, 사랑하는 여인을 얻기 위해 7년을, 또 다시 7년을 더 일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간신히 금의환향하여 이제 숨을 돌리며 꽃길 인생을 꿈꿨지만, 사랑했던 아내 라헬을 먼저 보냅니다. 가장 사랑하는 아들 요셉을 잃습니다. 노년엔 기근이 들어 먹을 것이 없자 자식들을 타지로 보냅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이 야곱을 험악한 세월을 살게 하신 걸까요? 하나님은 야곱이 훈련을 이기고 성장하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엄마 치마폭에서 살던 야곱이 강해지기를 원하셨습니다. 자고로 대를 이을 자식은 곱게 키우는 것이 아니거든요. 야곱이 점차 강해지고 성장함을 우리는 얍복강가에서 밤이 새도록 하나님의 사자와 더불어 씨름하는 장면에서 볼 수 있습니다. 야곱은 환도뼈가 위골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사자를 붙들고 늘어졌습니다. 축복할 때까지 말입니다. 날이 밝아오자 하나님의 사자가 결국 야곱을 축복하고 이름을 이스라엘로 바꾸어주었습니다(창32). 하나님은 이때 뿌듯하셨을 겁니다. 예전의 야곱이 아님을 기뻐하셨을 겁니다. 야곱은 험한 길을 가면서 강해졌고, 모든 면에 성장했습니다. 육적인 것뿐 아니라 영혼도 더욱 성장해서 더욱 하나님만을 바라보는 자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야곱에게 꽃길이 아닌 험한 길을 주신 이유입니다.
이런 이야기 아십니까? 옛날 캐나다의 동부에서 서부로 활어를 운반하는데 열차로 3일이 걸렸다고 합니다. 그런데 매번 운송 중에 물고기의 1/3 가량이 죽어버렸습니다. 왜 그럴까 연구해보니 이 물고기들이 수조 안에서 오랜 시간 있다 보니 축 늘어져서 죽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상인들은 고민하다가 그 후로 수조에 작은 상어 한 마리씩을 넣었습니다. 그랬더니 이 물고기들이 상어를 피해 도망 다니느라 멀미할 시간이 없어 모두 살아있었다고 합니다. 꽃길만 가다 보면 무기력해지고 딴짓도 하게 됩니다. 가장 한가할 때 다윗이 남의 아내를 취했던 것처럼. 그러나 험한 길을 갈 때는 정신 차리고 가게 됩니다. 그러므로 멀리 보면 험한 길을 가는 것이 진정한 꽃길입니다.
다윗의 삶도 파란만장했습니다. 이새의 막내로 태어난 다윗은 평탄한 인생이었습니다. 게다가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는 놀라운 일도 일어났습니다. 그런 그가 골리앗을 무찌르자 그야말로 이제는 바로 왕이 되고 꽃길만 펼쳐질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웬걸, 속 좁은 사울 왕의 질투에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기며 허구한 날 도망자로 살아야했습니다. 왕이 된 후에도 그는 아들 압살롬에게 쫓기는 등 험산준령을 넘나들었습니다. 그렇다면 다윗을 향한 하나님의 뜻은 무엇이었을까요? 하나님은 다윗이 오롯이 하나님만 의지하기를 바라셨던 것입니다. 세상에 의지할 것은 사람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임을 깨닫게 하기 위해 그를 사지로 몰았던 것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 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찌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이 시편 23편은 고난 중에도 온전히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다윗의 심정이 고스라니 적혀 있습니다.
저도 녹록치 않은 삶을 살았습니다. 예수를 만난 이후의 삶은 ‘물 없는 사막이요, 눈 덮인 산야’를 걷는 심정이었습니다. 세상 모든 것을 뒤로 하고 주의 종의 길에 들어설 때, 또 내게 성령의 능력이 임하여 귀신을 쫓고, 병을 고치게 되었을 때 제 목회 길은 꽃길일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웬걸요, 이단이니 잘못되었다느니 매스컴은 물론이고, 저를 안수한 교단에서조차 저를 핍박하기 시작했고, 가족과도 헤어지는 등 그야말로 사면초가였습니다. 분명히 하나님은 환상 중에 성경이 열리면서 ‘명성’이란 글씨는 보여주셨건만, 상황은 역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전국을 돌면서 집회를 할 때마다 방해세력이 있었고, 협박도 잦았습니다. 그때는 하나님의 생각과 길이 나와 다름을 몰랐습니다. 그러나 2000년이 되면서 하나님은 저를 해외로 나가게 하셨고, 제가 원하고 기도했던 세계교구가 현실이 되게 하셨습니다.
해외집회는 꽃길이었냐고요? 아니요. 한치 앞도 모르는 환경과 조건들이 늘 맨땅에 헤딩하는 기분이었습니다. KGB에 끌려가 조사를 받고, 종교재판을 받고, 추방을 당하고, 더위를 먹고, 가스에 질식되고, 차량사고, 비행기사고 등등 이루 말할 수 없는 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통해 저는 강해졌고, 그것에 대처하는 지혜를 얻었으며,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주바라기 인생으로 만들어주었고, 기도의 일생을 살게 했습니다. 그것이 저를 향한 하나님의 크신 생각과 뜻이었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자신의 일생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러 번 여행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고후11:26~27). 죽고 싶을 만큼 힘들었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가 그것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파악했습니다.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4:11~13).
목적 없는 훈련이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생각과 뜻이 있어서 그러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꽃길이 아닐지라도,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처럼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불평하지 말고, 하나님께 나의 일생을 맡기고 따라갑시다. 분명히 ‘이래서 그러셨구나!’ 하는 날이 올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동굴에 던지신 것이 아니라 터널을 통과하게 하신 것임을 훗날 알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통과한 후에 그 모든 것들은 우리의 멋진 추억담이요, 간증이 될 것입니다. 야곱이 바로 앞에서
‘백삼십 년 험악한 세월을 살았다.’고 고백한 것은 원망을 토로한 것이 아니라 멋진 추억담을 회고한 것입니다.
지금 가시밭길을 걷고 있습니까? 수렁에 빠졌습니까? 당신은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있는 것입니다. 당신에게 또 하나의 추억담이 생길 겁니다. 훗날 그것을 간증하게 될 것입니다.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시119:71). 할렐루야!
가지치기를 해줘야
열매가 실해진다
대를 이을 자식은
곱게 기르지 않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