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 앞에 설 때
2000년부터 약 15년 동안 멕시코를 비롯한 중남미 지역을 목사님과 함께 100여 차례 이상 방문했다. 처음에는 동굴 같은 숙소에서 지내기도 하고, 때로는 그나마 에어컨도 없는 곳에서 더위를 먹어가며 지낸 적도 있다. 빈대에 물려 다리에 좁쌀 같은 종기가 나기도 하고, 20시간 넘게 승합차를 타고 이동하기도 했다. 사막지역에 가서는 얼마나 더운지 숨쉬기도 힘들었다. 좀 젊은 나도 그러했는데 목사님은 얼마나 힘드셨을까. 그렇다고 내색 한 번 하지도 않으셨고, 오직 집회 성공에만 집중하며 기도에 올인하시는 모습이었다. 어디를 가나 ‘아름답다, 좋다’를 연발하시며 초(超)긍정의 마인드로 상황을 장악하는 목사님의 모습에서 성공자의 멘탈리티가 무엇인지 배웠다.
그렇게 10여년이 지나자 목사님의 명성은 남미 전역에 퍼져나갔고, 그때부턴 가는 도시마다 권력자들이, 언론이, 재력가들이 목사님을 만나고 싶어 했다. 그러더니 숙소가 달라졌다. 과테말라에 갔을 때는 대통령 아들이 제공하는 호텔에 들어갔는데, 집회 기간 동안 새벽에 일어나 화장실 찾는데 애를 먹을 정도로 넓은 곳이었다. 그리고 파나마와 코스타리카에 갔을 땐 대통령궁에 들어가 그 나라 최고 권력자 앞에 서서 조언하고 기도해주시는 목사님을 보았다.
목사님은 오직 집회의 성공과 더 많은 지역으로 복음의 지경을 넓혀 달라고 기도하시며 처음부터 일관된 자세로 최선을 다하실 뿐이었다. 잠언에 “네가 자기 사업에 근실한 사람을 보았느냐 이러한 사람은 왕 앞에 설 것이요 천한 자 앞에 서지 아니하리라”(잠22:29)고 말씀하신다. 이 약속의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진 것이다. 또한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신28:1)는 약속의 말씀이 이루어진 것이다. 이 모두 살아계신 하나님의 약속을 목사님이 삶으로 보여주시는 간증이라 믿는다.
왕 앞에 선다는 것은 두 가지 의미를 지닌다. 왕은 상벌을 통해 통치하기 때문에 왕 앞에 설 때는 상을 받든지, 벌을 받든지 두 갈림길에 서게 된다. 이는 마지막 때 희고 큰 보좌 앞의 심판, 곧 최후의 심판에서도 마찬가지다. 하나님 앞에 상을 받고 영생의 천국에 들어가는 자가 있는가 하면, 영벌에 처해 지옥으로 떨어지는 자도 있게 된다. 왕 앞에는 오로지 혼자 선다. 그 누구의 도움도 받을 수 없다. 내가 이 땅에서 한만큼 그대로 심판과 보상을 받는다.
자, 당신은 왕 앞에 어떤 모습으로 설 것인가? 칭찬과 존귀를 받는 자로 설 것인가, 아니면 돌이킬 수 없는 죄인의 모습으로 설 것인가? 이는 오로지 각자의 몫이다. 마지막에 웃는 자가 진정한 승자라 하지 않던가. 부디 마지막까지 잘 가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