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신앙은 짝퉁이냐, 명품이냐?(시37:1~11)
과일은 익을수록 향이 좋습니다. 그러나 과일이 썩으면 아주 고약한 냄새가 납니다. 꽃향기는 은은하고 매혹적이지만, 썩으면 그 또한 냄새가 아주 고약하고, 독소까지 뿜어냅니다.
우리도 그렇습니다. 성령 충만함을 입을 때는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합니다. 성령은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의 열매를 맺기 때문입니다(갈5:22~23). 그러나 성령 충만함을 잃으면 온갖 더럽고 추악한 냄새를 뿜어냅니다. 불의, 추악, 탐욕, 악의,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롬1:29~31)의 냄새입니다.
여러분, 내 체취는 내가 못 맡고 남이 맡습니다. 나에게서 그리스도의 향기가 나는지, 아니면 내게서 세상에 찌든 냄새와 세상의 썩은 오물 냄새가 나는지 옆 사람은 잘 알고 있습니다. 어떤지 한 번 물어보세요. 예수님은 마태복음 5장의 산상수훈을 통해 ‘향기 나는 그리스도인’ 이 되는 8음계를 우리에게 가르치셨는데, 그중 하나가 ‘온유함’입니다. 온유는 따뜻할 온(溫), 부드러울 유(柔)로, 마음이 부드러운 것을 말하는 것은 물론이고, 고통이나 억울함 심지어 굴욕 속에도 내면적으로 부드러운 심령을 견지하고 겸손히 참아내는 고상한 인격을 뜻합니다. 성경은 온유한 자가 받을 복에 대해 이렇게 말씀합니다.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마5:5), “오직 온유한 자는 땅을 차지하며 풍부한 화평으로 즐기리로다”(시37:11). ‘땅을 기업으로 받는다’ 는 것은, 먼저는 천국을 받는다는 뜻입니다. 영적인 축복을 말하는 것이지요. 둘째는 이 세상에서 실제적인 축복을 주십니다. 우리에게 가시적이고 현실적인 축복을 허락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복을 쫓아다닐 필요가 없습니다. 온유한 자가 되면 저절로 복이 따라옵니다. 여러분, 온유함의 대명사는 ‘모세’입니다.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승하더라”(민12:3). 민수기 12장의 내용을 들여다보면 이렇습니다. 모세가 구스 여인을 취하는 것을 본 미리암과 아론이 모세를 비방합니다. 이를 보신 하나님이 미리암과 아론을 회막으로 나오게 하신 후에 진노하십니다. 하나님이 떠나자 미리암은 그 자리에서 문둥병에 걸리고 맙니다. 모세가 보는 앞에서 말입니다. 보통 사람 같으면 그것을 보고는 “내게 덤비더니 샘통이다.”라고 했을 테지만, 모세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모세는 미리암을 고쳐달라고 간절히 기도합니다.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어 가로되 하나님이여 원컨대 그를 고쳐 주옵소서”(민2:13). 이런 모세이기에 온유함이 지면에 승하다고 하신 것입니다. 이뿐 아니라 고라의 반역 등 여러 가지 역경이 있었지만 모세는 온유함을 잃지 않았고, 백성들의 끝없는 불평 속에서도 모세는 온유함을 마음속에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런 그에게 하나님은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을 버리고 새 민족을 이루자고 제안하십니다. 여기서 모세의 온유함이 극명하게 표출됩니다. 모세는 오히려 하나님의 진노를 가라앉히며 하나님의 약속 된 백성을 지켜달라고 호소합니다(민14:11~19). 문득 제가 작시한 ‘모래와 파도’ 라는 곡이 생각나네요. 목회 초기, 여러가지 일들로 마음이 괴롭고 힘들 때 혼자 제주도에 갔었습니다. 제주 바닷가에서 혼자 상념에 잠겨있는데, 거센 파도가 바위에 부딪히니 파도가 자지러지며 물러가고, 받아친 바위도 눈물을 뚝뚝 흘리는 것이 제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반대쪽 모래사장을 보니 같은 세찬 파도가 몰려와도 모래는 그것을 다 안아 잠재우고 물방울을 만들며 방글방글 웃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곳으로 달려 내려갔습니다. 그리고 ‘나는 세찬 파도를 안는 통 큰 자가 되리라. 온유한 자가 되리라.’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온유함은 통 큰 자에게 합당 합니다(고후5:13).
사도 바울이 사울이던 시절에는 거센 파도에 정면 승부하는 바위 같은 자였습니다(행9:1). 그러나 예수를 만나고 그는 산산이 부서져 모래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을 핍박하는 자들을 다 품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마음의 돌덩이가 깨져야 온유한 자가 됩니다. 혈기를 깨버리고, 조급을 제하고, 다툼을 부셔내야 온유한 자가 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엡4:2~3) 고 했고,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의 택하신 거룩하고 사랑하신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고 누가 뉘게 혐의가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과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골3:12~14) 고 한 것입니다.
여러분, 사실 온유하면 손해 보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길게 보면 절대 그렇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바람과 태양이 나그네 옷 벗기기 시합을 하는 우화를 아시지요? 누가 이깁니까? 칼바람이 이겼습니까? 아닙니다. 따스한 태양이 이겼습니다. 결국엔 온유한 자가 세상을 이기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을 보십시오. 주님은 로마 병정들에게 붙잡혀 가면서도 양처럼 온순하셨습니다. 침을 뱉고, 때리는 자에게 도전할 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분은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 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셨습니다(사53:7). 그래서 그분이 그들에게 졌습니까? 아닙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고 이겼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예수님은 부활하셨고, 만왕의 왕으로, 만주의 주로 인류 앞에 다시 서셨습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마11:29).
이삭도 블레셋 사람들이 우물을 빼앗으면 싸우지 않고 우물을 그냥 넘겨주곤 했습니다. 그런 이삭은 거부가 되었고, 마침내는 아비멜렉이 화친을 청해오는 경지에까지 이르게 됩니다.
여러분, 따뜻한 곳에 꽃이 먼저 피고, 말이 따뜻한 자, 마음이 따뜻하고 부드러운 자 곁에는 사람이 몰려들게 되어 있습니다. 어느 스승이 제자들을 모아놓고 시장에 가서 가장 맛있는 혀로 만든 음식을 사오라고 했습니다. 시장에 나온 제자들은 소의 혀, 말의 혀 등등을 가져갔는데, 스승은 이것들을 시식을 해보라고 하고는 어느 것이 제일 맛있는지 물었습니다. 그런데 다들 하나같이 한 가지 음식을 지적했습니다. 그것은 가장 부드러운 혀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콜라처럼 뻑하면 혈기 내는 자를 좋아할 자 없습니다. 기타 줄처럼 파르르 하는 자 곁에 가까이 갈 자 없습니다. ‘왜 내 곁에는 사람이 안 올까?’ 하는 고민에 빠져있습니까? 생수처럼 온유한 자가 되면 사람이 몰려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들이 명품 인생, 명품 신앙인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명품은 참 부드럽습니다. 백을 만져봐도, 옷을 만져봐도 그렇게 부드러울 수가 없습니다. 명품 인생이 되려면 먼저 온유한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자기의 마음을 제어할 줄 알아야 합니다. “자기의 마음을 제어하지 아니하는 자는 성읍이 무너지고 성벽이 없는 것 같으니라”(잠25:28). 그러면 목사들도 성도들을 온유함으로 대할 수 있고, 온유함으로 권면하게 됩니다(딤후2:24~25). 또한 남편이나 아내들도 온유함으로 가정을 이끌게 됩니다(벧전3:1~4).
늘 말하지만, 내 인생은 내가 쓰는 자서전입니다. 모래처럼 온유함으로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이냐, 아니면 바위처럼 노를 발하여 다 부셔버릴 것이냐, 그것은 내 마음을 어떻게 다스리느냐에 달려있습니다(잠4:23). 내 마음을 다스리는 것은 성령충만에 있습니다. 내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힘을 빌려야 합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충만함으로 온유한 자가 되어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의 주인공이 됩시다.
“사람의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니라 그러므로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 내어 버리고 능히 너희 영혼을 구원할 바 마음에 심긴 도를 온유함으로 받으라”(약1:20~21).
할렐루야!
과일은 익을수록
향과 맛이 좋다
콜라 같은 자가 되지 말고
생수 같은 자가 되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