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꿉장난
목사님께서 “주님, 우리 성도들이 소꿉장난하고 있죠?” 물으셨다고 한다. 참으로 경이로운 비유이다. 뜻 없이, 값없이 부유하며 의미 없는 삶을 살아가는 우리네 삶, 소꿉놀이와 무엇이 다른가. 무엇이 위중한 일이고 내 삶의 가치를 어디에다 두어야 하는지 모른 채 우리네 삶을 꼭 소꿉장난처럼 살아버린다. 죽음을 앞에 두고는 제법 진지한 성찰 속에 삶을 돌이켜보지만 그것도 잠시뿐. 이내 이 세상, 장난 같은 삶에 빠져버린다. 그래서 주님은 우리에게 항상 깨어 있으라 하셨나 보다.
나는 이번에 죽음을 진지하게 맞닥뜨리는 두 번의 수술을 힘겹게 겪었다. 평강과 감사, 삶에 대한 진지한 성찰 속에 은혜로운 연단의 과정을 거쳤다. 그러나 그도 잠시, 어느새 내 마음에 분노와 크고 작은 감정들이 나를 삼키고 있음을 느꼈다. 참으로 어리석은 인간들이여. 부평초처럼 떠돌다가 훅 바람 불면 날려버릴 이 삶에 온통 마음을 빼앗기니 이생을 소꿉놀이로 보내는 것 아닌가.
‘주님. 내 속사람이 날로 새로워지게 하소서. 내 속사람이 내 삶의 주인 되게 하소서. 나를 격동하는 모든 육체적 자극에서 중심을 잃지 않고 깨어있게 하소서. 항상 성령께서 안주하시고 내 영이 깨어있도록 주님의 신령한 빛 속에서 살도록 하소서. 아무리 연단이 크고 위중한들 깨우침이 크지 않다면 우리는 다시 소꿉장난처럼 살다가 흙으로 돌아가는 허망한 인생 아닙니까? 주님! 내가 또 소꿉장난하고 있죠? 참 삶을 살기 원하는 나에게 세상 허상이 나를 사로잡고 있으니 오호라 나는 곤고하도다! 이 허망한 삶 속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주님! 제가 또 소꿉장난하고 있죠?”
이광주 전도사
leekjlkj@naver.com
강점에 집중하라
갤럽 리더십연구소의 선임강사이며 세계적인 컨설턴트인 마커스 버킹엄과 강점 심리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도널드 클리프턴이 함께 쓴 은 시종일관 강점에 초점을 맞춰 삶의 승리를 이뤄내라고 권면한다. 그러면서 버킹엄은 자신이 주도했던 갤럽조사 프로젝트의 결과를 보여주었다. 갤럽에서 지난 20여 년간 200만 명 이상을 인터뷰하고 연구한 결과, 승리한 사람들은 모두 약점의 지배에서 벗어나 강점을 발견하는데 자신의 많은 에너지를 쏟았다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의 약점을 고치기 위해 20% 정도 노력하고, 나머지 80%는 장점을 강화하는 일에 사용했다고 한다. 한마디로 승리는 약점의 보완이 아닌, 강점의 강화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사람마다 약점과 강점이 있다. 흔히들 약점일지라도 노력하면 극복할 수 있다고 믿는데, 이것은 이미 금이 간 벽을 벽지로 가리는 헛수고라고 지적한다. 다시 말해 약점을 보완하는데 힘을 쏟지 말고, 강점에 더욱 집중하라는 것이다.
마이크로소프트사의 창업주인 빌 게이츠에게도 약점이 있었다. 그는 혁신적인 발상을 하고, 소비자의 관점에서 좋은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데는 천재적이었다. 그러나 법적, 상업적 공격에 대응하는 능력은 뛰어나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스티브 발머를 경영 파트너로 선택하고, 자신은 자신의 강점인 소프트웨어 개발에 집중해 승리했다.
세계 최고의 투자왕 워렌 버핏의 승리 비결도 약점 보완이 아닌 강점 강화였다. 느긋한 성격을 가진 그는 이 성품을 십분 발휘했다. 그는 자신의 이 느긋한 성품을 그 유명한 ‘20년 전망’에 적용해 20년 동안 어느 정도 확신을 가지고 예측할 수 있는 회사에 투자해 성공했다.
이초석 목사님께서도 기회가 되실 때마다 강조하시는 말씀이시다. ‘강점에 집중하라.’
공평하신 하나님은 누구에게나 한 가지 이상씩 강점(달란트)을 주셨다. 지금부터라도 그 강점에 집중해서 승리하는 인생의 길로 들어서는 예수중심교인이 되어보자. “오직 주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신대로 하나님이 각 사람을 부르신 그대로 행하라 내가 모든 교회에서 이와 같이 명하노라”(고전7:17).
이현승 전도사
온유(溫柔)
세상에 막 태어났을 때 사람들은 저를 ‘예화’라고 불렀습니다. 저의 첫 번째 이름은 온유가 아닌 ‘예화’였습니다. 저에겐 두 명의 남동생이 있는데, 첫째 동생의 이름은 대화, 막냇동생은 화백입니다. 총회장 목사님께서는, 사람은 부르는 이름대로 성장한다고 하시며, 이름을 잘 지어야 성공한다는 설교를 하셨습니다. 이 말씀에 감동 받으신 어머니께서는 그 날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앞으로 집에서는 너희를 다른 이름으로 불러줄게. 예화는 성격이 불같으니까 온유라고 부르고, 대화는 잘난 체를 많이 하니까 교만하지 말라고 겸손이라고 부르고, 화백이는 거짓말을 많이 하니까 정직이라고 부르면 좋을 것 같아.”
그날부터 제 이름은 온유로 바뀌었습니다. 2010년 어느 날, 문득 온유라는 이름은 하나님께서 주신 귀한 이름이라는 감동을 받아 법적으로도 바꾸겠다고 결심하였습니다. 사실 오랜 시간 동안 함께했던 이름을 바꾸는 것이란 결코 쉽지 않은 결정이었습니다. 주민등록증부터 여권, 은행, 카드사, 보험사 등 모두 다 이름 변경 신청을 해야 하고, 친구들과 지인들에게도 이름을 바꿨다고 전해야 했습니다. 특히 오래된 친구들은 어색하다며 처음엔 바뀐 이름으로 부르기를 힘들어했습니다. 그렇지만 이름을 바꾸게 된 이유에 대해 설명하면 다들 재미있어하면서도, 제 성격을 잘 알기에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제가 이름을 바꾼 후 정말 온유한 사람이 되었냐고요? 믿음으로 이름을 바꿨더니 단번에 바뀌었다고 답한다면 거짓말이겠죠? 저는 작은 일에도 불같이 화를 내고, 변덕도 심하고, 자주 혈기를 부렸기 때문에, 제 자신이 온유한 사람이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름을 바꿔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막 화를 내고 있는데 누군가 “온유야!”라고 제 이름을 부르면 너무 큰 좌절감이 찾아올 때가 많았습니다. ‘아…, 난 정말 안 되는 건가? 왜 이렇게 화를 자주 내지?’ 또 어느 날은 신입사원에게 이런 말도 들었습니다. 회사에 면접을 보러온 날, 대표님의 이름이 온유라고 해서 정말 따뜻하고 자상할 줄 알았는데, 입사 첫날 보니 ‘아~, 이름만 그렇구나.’ 이렇게 생각했다고 합니다. 물론 우스갯소리로 말한 것이지만 가슴에 비수를 꽂는 것만 같았습니다. 목사님께는 온유한 사람에 대해 자주 말씀하십니다. 온유한 자는 땅을 기업으로 받는다며, “콜라 같은 자가 되지 말고, 물 같은 자가 되어라. 따뜻하고 부드러운 자가 사람을 얻는다.”라고 가르쳐주십니다. 그러나 저는 자주 콜라 같은 자였고, 온유하지 못한 성격 때문에 좋은 사람들을 많이 잃었습니다. 온유라는 이름이 감당하기 버거워서 이름을 다시 바꾸고 싶다고 여러 번 생각했습니다. “목사님, 온유한 사람이 되는 것은 너무 힘들어요.” 말씀드렸더니 목사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해주셨습니다. “얘야, 온유한 자가 되는 게 그렇게 쉬웠다면 온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다 땅을 기업으로 받게? 땅을 기업으로 받는 일은 결코 쉬운 게 아니야. 나도 뼈를 깎는 노력을 했어.” 목사님 말씀을 듣고 자신감을 얻게 되었습니다.
온유라고 불린지 벌써 10년이 넘었습니다. 온유한 사람이 되려고 각고의 노력을 하니 주변에서도 많이 알아주십니다. 가족도, 친척도, 가까운 지인도 많이 온유해진 것 같다 하고, 직원들도 “대표님이 달라졌어요.”라고 종종 말합니다. 모두가
“온유야, 온유야.”라고 불러주니 더욱 온유한 사람이 되겠다고 한 번 더 다짐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저에겐 큰 꿈이 있습니다. ‘에데니끄’를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시켜 그리스도의 향기를, 에덴의 향기를 세상에 알리고 싶은 큰 꿈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꿈을 이루려면 제 자신 먼저 온유한 사람이 되어야 함을 알고 있습니다. 온유한 자만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수 있으니까요. 우리 예수중심교단의 성도님들도 모세처럼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승하시길 진심으로 소망합니다. “오직 온유한 자는 땅을 차지하며 풍부한 화평으로 즐기리로다”(시편 37:11).
김온유 집사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
오래전, 목사님의 설교 말씀 중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라는 말씀이 스치듯 기억난다.
그 당시 한국 땅을 단 한 번도 떠나본 적이 없이 살았다. 꿈틀거리는 마음을 다스려보려고 세계지도와 미국 지도를 샀다. 책상 유리 아래 지도를 깔고 날마다 되뇌었다. ‘이 넓고 넓은 곳을 한 번씩은 밟아봐야겠다.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는데 그 많은 일 중 몇 가지라도 해봐야겠다.’
그리고 미국으로, 일본으로, 베트남으로, 말레이시아로 수도 없이 많은 비행기를 탔고, 지금은 말레이시아의 수도인 국제도시 쿠알라룸푸르에서 3주째 중고등학생들과 강도 높은 영어 수업을 하고 있다.
이곳은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국제도시이다. 수없이 많은 외국인 틈에서 조금도 위축되지 않고 당당히 살고 있다. 서툰 영어로 이십여 명의 학생들과 대화를 하고, 하고 싶은 일을 하고, 그들에게 꿈을 찾아주려고 세계적으로도 명성이 자자한 대학교 답사를 다닌다.
브로큰 잉글리쉬로 이곳의 많은 업무를 처리하면서 무서울 것 없이, 거침없이 버텨낼 수 있는 건 주님이 주신 열정과 신념 때문이다. 주어진 일에 할 수 있는 모든 에너지를 쏟아붓고 주님이 함께하신다는 믿음을 심장에 가득 채우고 살아간다.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담대함은 세상 어디를 가더라도 거침없이 달릴 수 있는 에너지가 된다.
어느덧 예순이 되었고, 당뇨라는 지병을 가지고 있으며, 눈은 망막 변성으로 가끔 걷기에 어려울 때도 있다. 그러나 이런 장애는 주님과 함께 세상을 향하여 내딛는 발걸음에 어떤 장애도 되지 않는다.
오늘도 세계인이 모여들며 고층 건물로 가득 차 있는 어느 거리를 걷는다. 홀로 걷는 것이 아니라 주님 보호하심 아래 내딛는 걸음걸음임을 알기에 오늘보다 내일은 더 멀리, 더 많이 걷고, 또 걸어보려고 작심한다.
시마다 때마다 목사님께 배웠던 신앙의 모든 것들이 없었다면 지는 석양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초로의 할머니가 되었을 텐데, 지금도 여전히 삼십 대 열정으로 세상을 향할 수 있음은 누가 뭐래도 평생 신앙의 인도자였던 그분의 가르치심 때문임을 확신한다. 이곳의 곤고한 시간에도 주님을 향하여 두 손을 모을 수 있는 마음도, 순간마다 주님의 다스리심을 느낄 수 있음도 오랫동안 배우고 익혔던 그분의 가르치심 때문임을 알고 있다.
먼 곳에 있어서 가까이 갈 수 없고, 뵐 수 없고 들을 수 없지만, 그분이 주님의 말씀으로 세워주신 신앙과 삶의 푯대는 천국에 이를 때까지 흔들림 없을 것이라 확신한다. 이렇게라도 그분을 향한 감사와 사랑을 드릴 수 있도록 인도하시는 주님께 모든 영광을 돌리며 주어진 이방 나라에서의 시간을 기도로 이겨보려 한다.
주님! 감사합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사41:10).
오자유 집사
lovelyactor@naver.com
성장의 딜레마
배달어플 사용자가 2018년도 2,500만 명, 즉 국민 2명 중 1명이 배달앱을 통해 음식을 주문했다는 통계가 나왔다. 홀 장사만 하던 수많은 식당들이 우후죽순 늘어나는 대행업체를 통해 배달까지 겸하면서 배달 위주의 나의 가게는 점점 수세에 몰리기 시작했다. 한식코너만 300여 개에 가까운지라 그 업소들과 치열한 경쟁을 벌이며 날마다 새로운 반찬과 더 나은 메뉴개발에 고민한다.
그러던 중 우연히 이른 새벽 3%의 업소가 배달운영 중임을 발견했다. 고객의 평점이 낮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주문수를 보유하고 있음을 알고 나는 도전을 받았다. 그러나 미명에 배달직원을 구하는 것이 어려워 그저 좋은 낚시터를 배회할 수밖에 없었다.
때마침 목사님의 설교 중 ‘내비게이션’ 단어에 귀가 번쩍 뜨인 나는 근거리 배달에만 익숙한 딸에게 후한 보너스를 제시하며 내비게이션을 이용해 중장거리도 배달해줄 것을 부탁했는데, 의외로 딸은 이 요청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덕분에 매출 상승 가도를 달리게 되었고, 손익분기점에서 한결 자유로워졌다.
나는 매일 새벽잠과 힘겨운 사투를 벌인다. 그러나 새벽 3시경 들르는 시장에는 엄동설한에도 모닥불에 의지해 삶의 현장을 누비는 시장 상인들을 보며 나 자신을 추스르곤 한다. 일찍 출근한 딸은 연신 하품을 하면서도 ‘새벽공기가 참 상쾌하네요.’ 하며 새벽의 매력에 젖어가고 있다.
‘장사가 안 된다’, ‘불경기라 일자리 구하기가 힘들다’…, 좌절하지 말고 구하고 찾고 고민해보자. 분명 주님이 예비하신 길을 찾을 것이며, 번뇌하고 움직이는 만큼 근로소득이 돌아온다. 변화를 두려워말고 생각의 범위를 넓혀 추진력을 가지고 밀고 나가다 보면 나만의 브랜드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새들 지저귀는 청명한 새벽, 두 모녀는 서로에게 ‘파이팅!’을 외치며 박수를 보낸다.
추성숙 집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