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호자
꽤 오랫동안 속이 좋지 않았는데 참고 있다가 얼마 전 배에 통증이 있어 병원에서 위와 장에 있는 용종을 제거했다. 의사와 상담하니 “조직검사 결과는 일주일 후에 나옵니다. 결과 들으실 때 꼭 보호자 분과 함께 오셔서 들으십시오.” 한다. 듣기가 어색했다. 보호자? 내가 보호자였지 누가 나의 보호잔가? 젊은 의사가 나이들은 환자에게 하는 말로 넘기기에는 생각이 많아졌다. 상태가 안 좋을 것을 미리 얘기하는 건가 싶기도 했다.
누가 내 보호자일 것인가?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다. 내가 피보호자였던 기억이 없다. 떠올려봤다. 처자식 친지, 친구, 지금도 날 돕고 있는 옛 부하 직원. 정확히 말해서 아무도 나의 보호자가 아니다. 어찌 살다 보니 이렇게까지 부모, 친지, 일가친척, 보호자 없는 외톨이 신세가 되었나 생각하니 자업자득이란 생각과 함께 씁쓸한 생각이 든다. 그리고 하나님밖에는 의지할 곳 없는 삶으로 만드신 뜻에 순종할 수밖에 없음을 깨닫는다. 살면서 겪었던 죽음과 맞닥뜨렸던 순간들, 절체절명의 순간들, 사면초가의 순간들, 그때 누가 나의 의지가 되었는가 돌이켜보면 오직 하나님이셨다. 오직 예수님이셨다. 나는 그분으로 만족했고, 행복했다. 까짓 신기루처럼, 물거품처럼 뜻 없이 부유하다가 사라질 인생, 무엇이 중할까. 내 갈 길 하늘 길, 그 길만이 내 삶의 전부요, 푯대일 뿐이다. 그런 삶에 후회는 없다.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자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나의 피할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시18:1~2).
이광주 전도사
공중을 창조하심 (창세기 1:6~8)
하나님은 하늘 보좌에서 범죄한 천사를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가두셨고(유6), 그 안에 비눗방울과 같이 만드신 공간을 윗물과 아랫물로 나누시고 그 사이를 궁창이라 하신 그 공간의 크기가 100억 광년이라 하니, 하나님의 아들이 고난 받으실 일에 사용하실 궁창이 이토록 광대할진대(히1:10~12) 부활로써 들어가 세세에 통치하실 그 영광의 옥좌(玉座)는 과연 어떠할까(눅24:26, 히1:2,8, 계21~22장)? 궁창의 외벽은 수면으로 되어 있고 거기에는 하나님의 신이 운행하니(창1:2) 마치 에덴동산을 화염검으로 결박해놓음과 같고(창3:24), 교도소에 죄수를 결박하고 철조망 치고 군인들이 보초 서는 것 같다 할 것이다. 이 안에 결박되면 아무도 나갈 수 없으니 궁창은 절대로 제한을 받는 시한적 물질계이다(벧후2:4, 3:10).
궁창을 ‘만유’라 함은 하나님의 독생자가 피 뿌려진 옷을 입고(계19:13) 죽음과 부활을 통해 입성하실 보좌의 현관과 같이 그의 공생애를 실현하실 처소라 함이요, 궁창을 ‘음부’라 함은 하늘에서 쫓겨나와 결박된 마귀를 심판하고 형벌할 처소라 함이요, 그 음부를 ‘세상’이라 함은(요3:16) 선지자와 증인의 직분을 받은 인간이 그리스도의 초림을 마중했고, 인자의 재림을 마중할 처소를 일컬음이니, 하나님은 만유와 사람을 지으시고는 매우 좋으셨으나 둘째 날 마귀의 감옥인 공중을 지으시고는 좋으실 일이 없으셨다.
하늘에서 추락한 마귀는(계12:9) 공중을 왕래하니 공중권세 잡은 자요(엡2:2), 인간을 사로잡고 물질세계를 주도하니 세상 임금이라(요16:11). 예수께서 가신 광야는 하와를 속인 들짐승이 있는 곳이요, 사단이 하늘로서 번개같이 떨어지는 것을 확인하셨으니(눅10:18), 하나님의 아들은 처음부터 범죄한 마귀를 심판하려 음부에 들어오심이다(창3:15, 요일3:8, 행10:38).
하나님 아버지가 아들을 위하여 세우신 영광의 보좌는 6일 창조로써 이루신 공중 어딘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셋째 하늘이라 일컫는 영계이니(고후12:2), 하나님의 이름과 영광과 보좌가 있어 부활로써 승리하신 주께서 성도와 함께 세세토록 왕 노릇 하실 권좌다.
교회가 세워진 곳은 음부이다.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마16:18).교회에는 말씀이 있으므로 음부의 거짓이 지배하지 못한다. 또 말씀에는 생명이 있으므로(요1:4) 교회는 사망이 지배하지 못한다. 음부에는 하나님의 영광이 없으므로 어둠만 있으나(요1:5) 교회는 영광이 충만한 곳이다. 우리는 영광으로 하나님과 교통하고, 영광으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고로 거짓의 아비요 어둠의 주관자인 마귀를 정복하고 귀신들을 처벌한다.“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요11:40).
우리의 육체는 잠시 음부의 영향을 받지만, 예수의 은혜입고 성령으로 거듭난 영혼은 하늘 영광을 누리게 하셨으니, 하나님의 아들이 인자로서 보좌에 오르신 일에 사용하신 사람들이 받게 되는 보상이다(계22:12). 우리 장막 집을 벗으면 그 영광에 함께 이른다(고후5:1).
이와 같은 하나님의 경륜을 모두 이루시면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져지고(계20:10)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져지니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해 준비된 영영한 불못에 던져진다(계20:13~15, 마25:41).
이 땅에 한 번 출생한 육체는 반드시 종결이 온다. 지금은 구분이 없지만, 그때에는 당신 영혼이 알곡이었는지, 쭉정이였는지 구별될 것이다(마3:12). 알곡은 궁창 하늘을 넘어 영광의 도성에 입성할 권세가 있지만 쭉정이는 결코 궁창 하늘을 벗어날 수 없다.
그러므로 주님을 사랑하고 그 권위 앞에 무릎 꿇는 영감의 세월을 살아야 할 터요(엡5:16), 그날에 존귀와 칭찬과 영광을 얻기 위해 달려감이 지혜이다. 풍파 많은 나그네 인생, 종결되는 육체가 당신이라면 당신 존재의 가치가 과연 무엇이라 할 것인가? 당신이 그리스도의 신부로서 품위를 지키고 하늘 시민으로서 품격을 갖춰 살아야 할 이유이다.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벧전1:7). 박덕규 목사
위대한 유산
요즘 금수저, 흙수저 타령하며 자신의 환경 탓만 하고 사는 젊은이들이 많습니다. 부자를 헐뜯고, 대기업을 비난하고, 자신의 일이 잘 안되는 것은 태어난 환경이 그들과 다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재벌 2세, 재벌 3세, 부유한 집의 자녀들은 부모님으로부터 받은 유산이 많아 성공하는 것이고, 흙수저인 자신은 보잘것없는 집안 환경과 무능한 부모님을 둔 죄로 아무리 애를 써도 안된다고 늘 불평불만에 신세한탄만 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 아버지는 전라도 시골 마을의 찢어지게 가난한 집 7남매 중 다섯째로 태어난 흙수저 출신입니다. 아버지는 어려운 가정환경을 극복하고 훌륭한 사업가로 성공하셨습니다. 아버지처럼 성공한 사업가가 되고 싶은 저는 아버지의 성공 비결이 너무 궁금했습니다. 성공한 비결이 무엇이었냐는 저의 질문에 단 1초도 고민하지 않고 ‘부지런함과 기도 덕분’이라고 말씀하시며, 요즘 젊은 사람들의 게으름에 대해서, 그리고 우리 삼남매를 비롯한 청년들의 나약한 믿음과 기도가 부족함을 날카롭게 비판하셨습니다. ‘너희는 왜 이리 나태하냐? 왜 부르짖는 기도를 하지 않느냐? 왜 그리 믿음이 연약하냐?’ 몇 시간 동안 훈계를 들으며 한참 동안 생각이 많아졌습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아버지는 유산으로 물려줄 것이 아무것도 없는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지만, 할머니의 부지런함과 총회장 목사님의 유별난 믿음, 이 두 가지 위대한 유산으로 성공하셨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우리 아버지는 소름 끼칠 정도로 부지런합니다. 부지런한 생활이 습관이 된 것은 할머니께서 부지런하셨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총회장 목사님께서 항상 말씀하시듯 부지런하다 못해 바지런하다는 그 말씀이 딱 우리 아버지를 말하는 것 같습니다. 육체도 부지런하지만, 생각도 부지런합니다. 회사에서 사람을 만날 때 상대방이 어떤 말을 할지 예상 질문을 생각하고 그 예상 질문에 대한 답변을 미리 준비해놓으십니다. 아버지가 하고 싶은 질문에 대해선 상대방이 어떠한 답을 할지 여러 경우를 생각하여 수많은 시나리오를 머릿속에 부지런히 그립니다. 한 가지의 질문마다 열 가지의 답을 예상하고, 각 경우에 따라 대응할 방법을 강구한다고 하십니다. 아버지는 눈과 귀도 부지런합니다. 상대방이 지나치며 하는 사소한 말조차 주의 깊게 듣습니다. 나중엔 그 상대방이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듣고 기억하는 아버지의 섬세함에 감동합니다. 눈은 얼마나 빠르고 밝은지 주일에 교회 가는 길에 저만치 지나가는 차가 어떤 분의 차인지 번호판만 보고 단번에 아십니다.
아버지의 믿음은 정말 유별납니다. 총회장 목사님께서 가르치시는 그대로 실천합니다. 아버지는 기도가 최고의 성공 비결이라고 고백합니다.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매일 새벽 1시간, 잠자기 전 1시간씩 기도하고, 아침 예배시간엔 온 건물이 쩌렁쩌렁 울리도록 하늘을 침노하며 기도합니다. 매주 토요일마다 장로님들 기도회를 잊지 않고 가시고, 교회 가는 날엔 항상 일찍 나가서 예배를 위해 쉬지 않고 기도합니다. 아버지는 남의 재산이나 능력을 절대 부러워하지 않는데, 단 하나 부러워하는 것이 있다면 오직 믿음 하나뿐입니다. 우리 교회 어떤 장로님께서 수요예배에 늦지 않게 도착하시려고 3~4시에 출발하신다는 소리를 들으시더니, 그 믿음이 부러워서 원래 7시 반에 출발하던 것을 7시로 당기고, 7시에서 또 6시 반으로 옮겨 어머니와 저는 일을 하다 말고, 밥을 먹다 말고 교회 가기 일쑤입니다.
아버지는 우리 삼남매에게 아버지 기준에 못 미치는 모습이 발견되면 아침 예배를 드릴 때도, 식구들끼리 함께 저녁을 먹는 자리에서도, 어떤 자리든 상관하지 않으시고 요즘 세대들은 상상도 못할 훈계를 하십니다. “일찍 일어나라, 기도해라, 공예배에 빠지지 마라.” 똑같은 말씀을 한 자리에서 무한 반복합니다. 우리 삼남매는 매번 그 잔소리를 듣기 싫어했고, 짜증도 냈고, 심술도 부렸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중요한 사실 하나를 놓치고 있었습니다. 그 훈계가 우리에게 얼마나 크고 위대한 유산인지 깨닫지 못했던 것입니다.
형제자매님들, 현재 여러분들의 처한 환경이 불우하고 가정 형편이 넉넉지 않아 괴롭고 앞이 보이지 않나요? 여기 형제는 금수저라서, 저기 저 자매는 은수저라서 그들만 누리는 세상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여러분이 실패한 이유가 부모에게 받은 유산이 없기 때문인가요? 여러분들은 받은 유산이 하나도 없다고 생각하십니까? 총회장 목사님의 유별난 믿음, 목사님의 영원한 친구인 기도와 노력, 아무리 사소한 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하는 자세, 어떠한 일도 그 자리에서 끝장을 보시는 모습, 이 모든 것이 우리가 받은 유산이 아닌가요? 예수님의 피로 우리의 죄를 대속하여 주신 구원의 축복과 하나님 아버지께서 보내주신 성령님, 그리고 이 세상 만물을 다스릴 수 있는 권능을 주신 것,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유산이 아닌가요? 이보다 더 위대한 유산은 없습니다. 총회장 목사님의 유별난 믿음과 하나님께서 친히 주신 위대한 능력이 우리에게 주신 최고의 위대한 유산이라는 사실을 절대 잊지 마세요. 김온유 집사
마음의 열쇠
사람에게는 누구나 마음의 문이 있다. 물론 주인이 그 문을 열고 닫지만, 밖에서도 그 문을 열 수 있는 열쇠가 있다. 바로 인정과 공감이라는 열쇠다.
사람은 누구나 인정과 공감에 대한 갈망이 있다. 그래서 자신을 인정해주는 사람을 찾고, 자신의 마음을 공감해주는 사람을 찾는다. 인정받았을 때의 기쁨, 공감 받았을 때의 만족감은 경험해본 사람만이 안다.
남성들은 보통 인정에 대한 갈망이 더 크고, 여성들은 공감에 대한 갈망이 더욱 큰 것 같다. 그래서인지 남성들은 자신을 인정해주는 자에게 충성을 다하고, 목숨까지도 바친다. 마찬가지로 여성들은 자신의 마음에 공감해주는 사람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준다.
반면 자신을 인정해주지 않는 자와는 적이 되는 경우가 많고, 공감해주지 못하는 자와의 관계에는 선을 긋기 마련이다. 열쇠가 없는 외부인에게는 마음의 문을 꼭 닫기 때문이다.
나는 아내의 마음 문을 언제든 열고 들어갈 수 있는 남편일까, 아니면 처음과 달리 지금은 그저 외부인일까? 나는 남편, 부모님, 자녀 마음의 열쇠를 가진 자일까, 아니면 언제부턴가 적과 다름이 없을까?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11:28).
예수님께서는 연약한 우리의 모습 있는 그대로를 인정해주시고, 우리의 마음속 아픔을 공감해주시며 우리를 부르신다. 우리에게 편안한 쉼을 주시려고, 참된 평안을 주시려고. 우리는 나아가기만 하면 된다. 우리 자체가 주님 마음의 열쇠이기 때문에.
“마지막으로 말하노니 너희가 다 마음을 같이하여 동정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며 겸손하며”(벧전3:8).
박찬영 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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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인도하심 따라
30여 년 전, 예수중심교회의 전신인 한국예루살렘교회에 입교한 이후, 지금까지 목사님께 강력하게 배운 것이 기도였다. 그 시절부터 기도를 시작하면서 불렀던 복음송은 ‘주님여, 이 손을 꼭 잡고 가소서. 약하고 피곤한 이 몸을. 폭풍우 흑암 속 헤치사 빛으로 손잡고 날 인도하소서.’라는 곡이었다. 긴긴 시간 학원사업에 종사를 해왔고, 지금도 거의 30여 년을 교육사업에 전념하고 있다. 이렇게 한 우물을 파면서 길고 긴 시간을 버틸 수 있었던 것도 오로지 주님의 인도하심 덕분이었다. 그러다 수년 전 학원사업에 위기가 왔을 때, 다른 일을 찾아보려고 여러 차례 시도했다. 그럴 때마다 목사님께서는 잘 할 수 있는 일을 하라 하셨고, 아무리 찾아봐도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 이외는 잘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하여 무릎을 꿇고 다시 교육사업을 정상화시켰고 오늘까지 이르렀다.
하지만 해를 거듭할수록 우리나라 교육현장에서 느낀 것은 회의와 자책뿐이었다. 긴 세월 영어를 가르쳤던 영어선생이었지만 미국 여행에서 소통의 불편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아닌 것 같아서 아이들에게 영어회화의 중요성을 알려주기 위해서 여름과 겨울 방학 영어캠프를 시작했다.
그리고 4~5년의 세월이 지나 작년 11월 레베카 유학센터를 오픈했다. 장소는 선교사로 떠난 친구가 가련해 보여서 따라갔던 말레이시아이다. 동남아시아는 못사는 나라, 열악한 환경을 가진 나라일 거라는 편견을 깬 것은 한순간이었다. 다문화로 형성된 이 나라 사람들은 따뜻하고 친절했으며, 내가 원하는 고급 영어를 곳곳에서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각종 자원이 풍부한 부유한 나라였다. 우리나라와는 다른 교육의 천국이었고, 학생들에게 다양한 선택의 기회가 열린 교육의 선진국이었다.
생각해보면, 글로벌시대에 가장 최적화된 쿠알라룸푸르로 갈 수 있었던 것은 주님의 인도하심 덕분이었다. 목사님께서 늘 말씀하셨던 잘할 수 있는 일이었고 보람을 가지고 자랑스럽게 할 수 있는 일이다. 오늘도 아침이 시작되면 장소 불문하고 기도를 시작한다. 그리고 어김없이 주절거리는 나의 찬송은 믿음의 씨앗이 되어 항상 올바른 길로 인도해주시는 놀라운 주님의 사랑을 누리면서 살아간다. 나의 의지와 할 수 있다는 각오의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주님께 의지하는 삶을 산다는 것은 기적보다 어렵지만 수십 년 퇴적암처럼 다져진 나의 기도와 찬송으로 날마다 기적 같은 시간을 누리면서 살아간다. 지금까지 주님의 도우심과 인도하심으로 살아왔듯이 앞으로의 여생도 주님께서 늘 함께 인도하여주실 것을 믿으며 새로운 일을 찾게 해주신 주님께 모든 감사와 영광을 드립니다.
오자유 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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