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역사를 제한하지 말라 (민13:25~14:38)
우리는 지난주일, 예수중심교단의 30년의 역사를 함께 영상으로 봤습니다. 저는 영상을 보면서, ‘저것은 내가 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하신 것이다.’ 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어떻게 제가 소경을 눈 뜨게 하고, 앉은뱅이를 일으키고, 귀머거리를 듣게 합니까? 어떻게 제가 비를 멈추고, 구름으로 태양을 가릴 수 있습니까? 절대 못합니다. 그러나 사람은 할 수 없지만, 하나님은 하실 수 있기에 가능했습니다.
누가복음에는 하나님을 정의하고 있습니다. “가라사대 무릇 사람의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은 하실 수 있느니라”(눅18:27).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을 하시는 전지전능하신 분입니다. 그 분은 90세인 사라의 몸에서 이삭을 나게 했고, 흰무늬 양에게서 얼룩무늬 양떼를 만드셨으며, 죽은 나사로를 살리고, 사자의 입을 봉하게도 하셨습니다. 하늘에서 만나가 떨어지게도 하시고, 홍해도 가르시는 분입니다.
제가 목회 30년 동안에 세계 70여 개국에 복음을 전할 수 있었던 비결이 있습니다. 제가 가는 곳마다 기사와 이적을 나타낸 비결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제한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으로 하여금 마음껏 일하실 수 있도록 한 것이 목회를 성공으로 이끈 비결입니다.
하나님을 제한하면 제한을 받으시냐고요? 받으시다마다요. 하나님은 지성과 감성과 의지를 가지신 분이기에 제한을 하면 제한을 받으시는 분입니다. “볼찌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계3:20). 문을 열어야 그 분이 들어가신다는 것입니다. 문을 안 열면요? 못 들어가지는 않지만, 안 들어가신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입니다. 모세가 각 지파에서 한 사람씩 열둘을 택하여 가나안 땅에 정탐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똑같은 곳을 똑같이 보고 온 사람들이 두 부류로 나뉘었습니다. 그 중 열 사람은 ‘우리는 그들에 비하면 메뚜기에 불과하니 가나안 땅 입성은 불가능하다’고 했습니다. 열 사람은 스스로 한계를 긋고 하나님을 제한했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 두 사람은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오직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 밥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 말라”
(민14:8~9)고 했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하나님의 능력을 믿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출애굽 1세대 중 여호수아와 갈렙만을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하셨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제한하는 것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 아들이 어릴 때의 일입니다. 녀석이 무거운 것을 옮기느라 한참동안을 끙끙 거리고 있었습니다. 그것을 바라보다가 제가 아들에게 다가가 “왜 아빠한테 도와달라고 안 하는 거니? 아빠는 금방 옮겨줄 수 있는데.”라고 했더니 녀석이 그제야
“아빠, 이것 좀 옮겨주세요.”라고 했습니다. 아이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제가 그것을 번쩍 들어 옮겨주었습니다.
사람들은 그럽니다. “아휴, 이런 일까지 하나님께 도와달라고 해도 되나?”, 또는 “이건 하나님이라도 어쩔 수 없어.” 이러면서 하나님을 제한합니다. 어느 경우든 하나님을 제한하는 것은 같습니다. 거기에 하나님은 역사하실 수 없습니다.
마태복음 14장을 보면 하나님을 제한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예수님은 말씀을 듣던 자들이 배고플 것을 염려하셔서 그의 제자들에게 먹을 것을 주라고 명하십니다. 그 때 예수님의 제자인 빌립이 예수님의 명령이 아주 부적절한 것임을 설명합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립니다. 아무리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해도 그렇지, 이 많은 사람들을 어떻게 다 먹여요? 돈이 있어도 어디 가서 뭘 사다 먹여요?” 이렇게 말했습니다. 예수님을 따라다니며 수많은 기사와 표적을 보고도 ‘이것만은 안 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어린 아이가 가져온 물고기 두 마리와 떡 다섯 개로 수많은 군중을 먹이시고, 열 두 광주리나 되는 부스러기를 남기는 역사를 보여주심으로 제자들의 믿음 없음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1장에도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하는 자가 있습니다. 바로 마르다입니다. 오라비인 나사로가 살아난다는 예수님의 말씀에 마르다는 ‘죽은 지 사흘이나 되어서 예수님이라도 어쩔 수 없다’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이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요11:40)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제한하지 않으면 기적을 맛볼 것이다’라는 말씀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그리고는 돌을 옮겨 나사로를 살리셨습니다.
왜 사람들이 하나님을 제한합니까? 그것은 자기의 쥐꼬리만 한 지식, 세상적인 경험을 가지고 하나님을 잣대질하고, 말씀을 분해하기 때문입니다. ‘내 경험으로 봐서는 안 돼.’, ‘내 상식으로는 안 되는 말이지.’, ‘논리적으로 이게 말이 되냐?’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이며, 우스운 일입니까? 피조물이 창조주를 저울질하다니요? 그래서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싸우는 병기는 육체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 앞에서 견고한 진을 파하는 강력이라 모든 이론을 파하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하니”(고후10:4~5). 잘나빠진 너의 지식, 경험을 버리라는 말씀입니다. 어떻게 사도 바울이 그렇게 큰 능력을 행했습니까? 가말리엘 문하생으로 배운 지식을 다 배설물로 버리고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다시 발견되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빌립보서 3:8~9).
좀 배웠습니까? 좀 있습니까? 그게 하나님과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하늘을 당신의 보좌 삼으시고, 땅을 당신의 발등상 삼으시는 하나님 앞에서 그것이 무슨 대수겠습니까?
예수중심교단은 ‘도전과 모험이 없이는 미래가 없다’는 캐치프레이즈(catch phrase)를 내걸고, 앞으로 30년을 새로운 마음으로 시작하려 합니다. 저는 요즘 잠이 안 옵니다. 30년을 계획하느라 마음이 설레어 잠을 잘 수가 없습니다. 상상의 나래를 맘껏 펼치고 있는 겁니다. 누군가 제 말과 계획을 들으면 공상이다, 뻥이다 그럴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제한하지 않으면 이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말입니다. 과거 철산리에서 한 명을 놓고 시작한 예수중심교회가 오늘날 글로벌 성도들을 갖게 된 것 역시 하나님을 제한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으니까요. 두고 보십시오. 앞으로 30년! 예수중심교단에 나타날 하나님의 영광이 무엇인지를.
성경에도 입을 크게 벌려라, 큰 생각을 하라고 하셨습니다. “네 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시81:10). 여러분, 하나님께서 마음껏 우리를 도와주고 싶어도 우리의 생각이 작다면, 우리가 입을 작게 벌리고 있다면 고작 그것밖에 부어주실 수 없습니다. 비가 내릴 때 장독의 크기만큼 빗물이 받아지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하나님이 왜 아브라함에게 밤하늘의 뭇별을 보라고 하셨는지 잘 생각해야 합니다.
여러분, 성공하고 싶습니까? 병에서 낫고 싶습니까? 부자가 되고 싶습니까?
“이건 안 돼.” 라고 스스로 한계를 긋지 마세요. 하나님을 제한하지 마십시오. 그것이 믿음이요, 그것이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대접을 받고자 하는가
그러면 먼저 대접하라
우리에게 불가능이란 없다
불가능이란 생각이 있을 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