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려와 권리
배려의 사전적 의미를 되새기지 않아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배려의 의미를 잘 알고 있으며, 자신의 측은지심(惻隱之心)에 따라서 곧잘 배려를 베풀며 대인관계를 유지해나간다.
그런데 이 배려라는 것이 덜해도 탈이고, 더해도 탈이라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호의를 아홉 번 베풀면 호구가 된다’는 말이 있다. 선의의 배려가 잦아지면, 상대는 배려를 자신이 누려야 할 당연한 권리쯤 된다고 생각할 수 있다. 반면에 자의건 타의건 간에 배려가 소홀해지게 되면, 상대방과의 관계에 틈이 생기며 어색해지기 마련이다.
수업을 들으러 오는 학생들이 밥도 못 먹고 공부를 하는 것 같아 엄마의 마음으로 맛있는 간식을 챙겨준 적이 몇 번 있었다. 처음에는 고마운 마음으로 간식을 먹던 학생들이 수업하면서 간식 먹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기 시작하였다. 혹시라도 간식을 챙겨주지 않는 날이면, “선생님 오늘은 왜 간식을 안주세요?”라면서 은근히 섭섭해 하는 기색을 보이는 것이다. 아이들에 대한 배려의 의도가 바뀌어 버리고 만 것이다. 배려를 권리로 착각하는 것은 비단 아이들의 문제만은 아닌 듯하다.
명절 때마다 선물을 보내는 후배가 있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선물이 오지 않았다. 처음에는 바쁘겠거니 했는데, 점차 그 후배에게 화가 났다. 매년 생일이면 꽃과 메시지를 보내던 제자 녀석에게서 꽃이 오지 않았다. 서운해진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어느 덧 나는 후배나 제자들이 보내주는 것을 당연한 권리로 착각하면서 살았던 것이다.
적정한 수준의 배려를 유지하는 것과 배려에 대한 감사함을 기억해야 한다는 것은 가족지간에도 마찬가지다. ‘내리사랑’이라는 말처럼 자식을 향한 부모님의 사랑과 배려는 어쩌면 당연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부모님의 사랑과 배려가 자신이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인 줄 착각하며 오만방자해지는 자녀들이 종종 있다.
마찬가지로 자녀들이 부모님에 대한 감사의 뜻으로 하는 행동들을 부모님의 입장에서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경우도 있다.
한 해가 가기 전에 각자의 자리에서 ‘내’가 가족이나 타인으로부터 받았던 배려에 감사할 수 있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나에게 다가왔던 배려의 손길들을 응당 누려야 할 권리인 것처럼 여기고 살았다면, 처음에 누렸던 기쁨과 감사를 떠올려보자. 누군가가 나를 위해서 베풀어주었던 그 순간의 마음을 잊지 말고 작은 배려에도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보자.
목사님은 배려와 용서는 사랑의 친구라 하셨다. 우리, 능력있는 자의 특권, 배려와 용서, 사랑을 실천하여 2014년 모두 복 있는 자가 되자.
오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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