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보다 끝이 좋은 삶
최근 북한의 2인자 장성택이 무참히 공개 처형되는 사건이 있었다.
북한의 1인 지배를 강화하기 위한 김정은의 공포정치라는 설에 무게가 실린 가운데, 최고의 권력을 자랑하던 장성택이 그렇게 비참하게 죽음을 맞이한 것에 씁쓸함을 감추기 어렵다.
장성택이 태어났을 때, 그리고 북한에서 최고의 권력을 누릴 때, 누가 이런 마지막을 예상했겠는가? 이렇게 한치 앞도 못 보는 것이 인생이자 한계이기에 화려했던 그의 허망한 끝은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생각해보면 우리 삶의 ‘시작’은 이미 많은 것이 결정되어 있었다. 부유함과 가난함, 건강과 장애 등, 대부분 우리의 의지와 무관한 것들이 많다. 하지만 우리의 ‘끝’은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님을 만났는가, 어떻게 살기로 결심하는 가에 따라 확연히 달라질 수 있다.
부자로 태어났어도 하나님을 부인하면 지옥에서 물 한모금의 자비를 구해야할 것이고, 나사로처럼 가난함속에 허덕여도 하나님의 복음 안에 거하면 천국을 보장받는 것은 물론이요, 세상에서도 성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스포츠인, 연예인처럼 건강한 육체와 아름다운 외모로 자신의 이름을 높여도 자살, 구속으로 생을 마감하는 인생이 있는가하면, 닉 부이치치, 레나 마리아처럼 연약한 육체로도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사람들에게 힘을 주는 빛나는 인생이 있기 때문이다.
성경에도 하나님이 지목하여 초대 왕으로 추대되었던 사울이 사명을 잊고 자신의 명예에만 집착한 나머지 하나님께 버림받고 비참한 죽음을 맞이한 것처럼, 처음에 하나님이 주신 축복을 끝까지 지켜내지 못한 채 멸망을 자초한 인물들을 볼 수 있다.
반면, 예수 그리스도의 핍박자로 시작했던 사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난 후, 바울로 개명하며 새롭게 시작하고, 수많은 전도의 열매와 서신서를 남겨 창대한 마지막을 장식했던 것처럼, 선교지에서 도망치는 나약한 모습이던 마가가 자신을 거부하던 바울에게까지 매우 귀한 존재임을 인정받으며 복음서를 완성했던 것처럼, 시작보다 끝이 더욱 창대하고 위대했던 인물들을 우리는 교훈삼아야 한다.
교회 내에서도 처음에는 멋지게 사람들에게 폼 잡다가 말로는 비참하고 심지어 쫓겨나는 목사들, 멸망을 맛보는 장로, 권사, 집사들을 가끔 본다. 현재나 역사 속에 있는 사람들이나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우리는 이것을 거울 삼아 소유욕을 버리고 성취감에 기쁨을 맛보는 자가 되어야 하겠다. 그런 자는 후일에 아름답게 꽃을 피워 열매를 남기리라. 호사유피 인사유명(虎死留皮 人死留名)이라 하지 않는가. 예수 이름을 남기고 가는 자가 참 진리를 아는 삶을 산 자다.
2013년에 남겨진 우리의 모습은 어떠했는가? 아직은 세상이 말하는 멋진 삶, 완벽한 모습은 아닐지라도,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를 소망하고 세상 속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려 조금이라도 더 노력했다면, 우리는 마지막을 향해 잘 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내 욕심에 물질과 명예를 얻고자 하나님의 숨결을 멀리했다면, 우리의 마지막은 분명 비틀어지고 있으며 빨리 바른 길로 돌아서야 함을 깨달아야 한다.
2013년 한 해, 자신을 높인 삶을 하나님 앞에 회개함으로 내려놓고, 2014년 밝아오는 새해에는 천국에 우리의 마음을 두고 나의 이름이 아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우리 모두가 되길 소망해본다.
하인명
renming@daum.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