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면을 벗어라
경찰서에서 자주 듣는 말이 있다.
“야, 내가 누군지 알아? 나 이런 사람이야! 나 건들면 안 좋아. 이러이런 사람이 내 친구야.”
경찰관에게 큰소리를 치며 자신의 인맥과 지위를 내세우는 사람들. 그러나 그 말속에는 진짜 자신감이 아니라 ‘혹시 내가 처벌받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숨어 있다. 큰소리는 강함의 표현이 아니라 불안의 표현이다. 겁먹은 개가 더 크게 짖어대듯.
우리 주변에도 인맥을 자랑하고, 성공을 자랑하고, 외모와 재산을 자랑하는 사람이 있다. 이는 자신의 다른 부족함을 감추기 위해 쓰는 가면이다. 그래서 옛말에 ‘빈 수레가 요란하다’고 한 것 아니겠나.
게는 속살이 매우 연하다. 그래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단단한 껍질을 두른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상처받기 싫고, 약해 보이기 싫어서, 없어 보이고 싶지 않아서 자존심이라는 두꺼운 껍질을 두르고, 허세라는 가면을 쓴다.
아람 군대의 총사령관 나아만은 나라를 구한 영웅이었고, 누구나 부러워하는 권력자였다. 그러나 갑옷 속에는 아무에게도 보여 줄 수 없는 문둥병이 있었다(왕하5). 화려한 갑옷은 그의 영광을 나타내는 옷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그의 아픔을 감추는 가면이기도 했다.
나아만은 두꺼운 갑옷을 벗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요단강에 몸을 담갔을 때 치유를 받았다. 내 모습 그대로를 드러낼 때 회복이 시작된 것이다.
가면을 벗자. 부족함을 인정해야 채움을 받을 수 있고, 상처를 드러내야 치료를 받을 수 있다. 하회탈을 쓴 채 울고 있다면 누가 그 눈물을 알겠는가?
하나님은 가면 속까지 다 보고 계시지만, 우리 스스로가 가면을 벗길 원하신다. 우리의 연약함과 괴로움을 숨기지 않고 하나님 앞에 내려놓을 때, 하나님은 우리의 눈물을 닦아주시고, 상처를 싸매주시며, 회복시켜주시고, 다시 진심으로 웃을 수 있는 삶을 허락하신다.
우리, 가면 쓴 사울이 되지 말고, 있는 모습 그대로 하나님 앞에 나아간 다윗이 되자. 다윗이 받은 은혜와 평강이 넘치리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