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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언제 감동하실까?

1333호 · 2025-11-23
빛과 소금

하나님은 언제 감동하실까?

최근 어린이집에서 둘째 아이의 영어 발표회가 있었는데, 그 일정이 정해지자 우리 가족은 모두 걱정이 앞섰다. 둘째는 집에서는 누구보다 활발하고 말도 많지만, 사람들 앞에서는 수줍음이 많다. 매일 보는 선생님과 친구들에게도 인사를 잘 못하고, 교회에서 오래 알고 지낸 이모, 삼촌들이 이름을 불러도 내 뒤로 숨기 바쁘다. 그런 아이가 많은 사람들 앞에서 발표를 한다니, 걱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선생님도 “아이의 목소리가 너무 작다.”며 집에서 연습을 부탁하셨다. 고민 끝에 아이를 안고 기도해주며 이렇게 말했다.

“넌 충분히 잘할 수 있어. 왜냐면 너는 하나님의 자녀니까. 하나님의 자녀는 사자처럼 담대해. 목소리도 크고 자신감이 넘쳐. 하나님이 너와 함께하시니 넌 할 수 있어!”

발표회 전날, 아이가 긴장하는 모습이 보여 함께 가정예배를 드렸다. 그리고 첫째 아이와 발표회에 참석했다. 열 살인 언니도 긴장하고 걱정하는 눈치였다. 나는 아이를 바라보며 “괜찮아. 잘할 거야.” 하며 다독였다.

드디어 발표가 시작되었다. 많은 학부모님들 앞에서 아이들이 한 명씩 나와 발표를 했는데, 어떤 아이는 울며 아무 말도 못하고 내려오기도 했다. 그때 나는 조용히 기도했다. “하나님, 저는 지금 아이 곁에 서 있을 수 없습니다. 도와줄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그 안에 계시니 잘 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그 순간, 아이를 하나님께 온전히 맡길 수 있다는 사실이 참 든든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놀랍게도, 아이는 실수 없이 영어 대사를 끝까지 잘 해냈다. 원장님과 선생님들께서 “리허설 때보다 훨씬 목소리가 크고 무대 체질 같았다.”며 감동하셨고, 나 역시 눈물이 핑 돌았다. 우리 아이에게 그 무대가 얼마나 큰 도전이었는지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긴장과 두려움을 이겨낸 모습이 참 기특하고 대견했다.

그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하나님 아버지도 우리가 인생의 어려움 앞에서 두려움을 이기고 믿음으로 나아갈 때 감동하시지 않을까?’

아이를 키우며 하나님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되는 순간들이 있다. 이번 일은 내게 그런 특별한 은혜로 다가왔다.

나 또한 우리 아이처럼 하나님을 감동시키는 자녀가 되고 싶다.

송지혜 집사

소망의 언덕

예수님께 ‘착 감기는’ 인생

기도원 집회를 준비하던 중, 문득 손목시계를 살펴보니 시곗줄이 많이 낡아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전에 선물 받은 새 가죽 시곗줄을 꺼내 보았습니다. 그런데 막상 바꿔 차 보니 어찌나 뻣뻣하고 손목에 감기지 않던지, 오히려 손목만 아파서 결국 다시 포장해 서랍 속에 넣어두었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상황이 달랐습니다. 시곗줄이 꼭 필요했고, 기도원 집회 일정은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그 뻣뻣한 새 시곗줄을 차고 떠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운전할 때마다 손목에 걸리고 불편했지만, 그 불편함을 감수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며칠 동안 계속 시계를 차고 다니다가 서울에 돌아와 다시 보니 놀라운 변화를 발견했습니다. 그토록 딱딱하던 시곗줄이 제법 부드러워지고, 손목 모양에 맞게 자연스러운 곡선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이제는 손목에 ‘착 감기는’ 편안함이 느껴졌습니다.

그 순간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예수님께 어떤 존재일까? 예수님께 뻣뻣하고 불편한 존재일까, 아니면 예수님의 손목에 착 감기는 부드럽고 순한 존재일까?’

새 시곗줄이 서랍 속에 그대로 있었다면 언제까지나 딱딱하고 뻣뻣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실제로 착용하고 생활하면서 손의 열과 움직임을 통해 점점 제 손목에 맞게 길들여진 것입니다.

우리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를 왔다 갔다 하는 것만으로는 우리가 예수님께 길들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도 아닙니다. 매일의 삶 속에서 예수님과 동행하며 ‘착 감기는’ 관계를 맺을 때, 뻣뻣하던 우리 성품이 부드러워지고, 딱딱하던 마음이 온유하게 변화되어 갑니다.

성경은 모세를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승하였다”(민12:3)고 말합니다. 그의 온유함은 단지 성격이 부드럽다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께 길들여진 사람, 하나님의 뜻에 ‘착 감기는’ 사람이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가을은 결실의 계절입니다. 이 계절에 우리 신앙은 어떤 모습입니까? 예수님께 잘 맞는, 손에 익은 시곗줄 같은 인생입니까? 아니면 여전히 새것처럼 뻣뻣하고 손목을 아프게 하는 시곗줄입니까?

이현승 목사

내가 매일 기쁘게

편안함의 습격

요즘 ‘편안함의 습격’이라는 책을 탐독하고 있다. 이 책은 현대 문명의 발전이 우리에게 전례 없는 편안함을 제공하고 있지만, 이 안락함이 오히려 우리의 신체와 정신을 악화시키고 있다고 날카롭게 지적한다.

부모가 자녀 앞의 모든 장애물을 맹렬히 제거하는 ‘제설기 양육’이라는 재미있는 표현을 말하며, 고난을 겪어본 적 없는 젊은 세대에서 불안과 우울에 시달리는 경우가 급증하고 있음을 얘기한다.

당장 내가 재직 중인 회사만 봐도, 대학 졸업 후 갓 입사한 신입사원의 부모가 회사에 전화해 휴가를 대신 신청한다거나, 우리 아이 힘든 부서에 배치하지 말아달라는 요구를 하는 일이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성장과 성숙은 본래 고통과 아픔을 필연적으로 수반한다. 이해인 수녀님의 시 ‘꽃이 되는 건’에서는 “꽃이 필 때 꽃이 질 때 사실은 참 아픈 거래, 나무가 꽃을 피우고 열매를 달아줄 때도 사실은 참 아픈 거래”라는 구절을 통해 성숙의 뒤편에 감춰진 고통의 가치를 말한다.

시편 23편 속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는 목자들이 양들에게 싱싱한 꼴을 먹이기 위해 반드시 지나야 하는 험난한 대이동 경로라고 한다. 이곳을 이겨내고 꼴을 먹은 양들은 더욱 건강하고 튼튼해진다. 역경은 성장을 위한 필수적인 통과의례인 셈이다.

자신의 목회 인생을 ‘물 없는 사막이요, 눈 덮인 산야’라고 표현한 총회장 목사님의 간증은, 역경과 고난 없이는 결코 이룰 수 없는 가치와 역량이 있음을 가르치는 살아있는 교재다.

질문해보자. 편안함에 길들여져 나약해질 것인가, 아니면 가장 가까운 누군가의 말처럼 ‘편안하기를 포기’하고 고통과 역경을 감수하여 멋진 미래를 만들어갈 것인가 말이다. 성도 여러분의 정답은 무엇인가요?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롬5:3~4).

전호정 집사

한국 교회사

조선 기독교의 아버지 길선주 목사

1869년 3월 15일 평안남도 안주에서 태어난 길선주 목사는 19세 때부터 산속에 들어가 도를 닦기 시작했습니다. 불교와 관성교와 선도 등에서 가르치고 수련했지만 민족을 구원할 만한 힘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마펫 선교사는 “몸은 죽여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자를 두려워 말고, 몸과 영혼을 지옥에 멸하는 자를 두려워하라.”,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으면 영생을 얻는다.”라고 전도했습니다.

길선주는 진리를 더 알아보기 위해서 친구 두 명, 문흥준과 김종섭을 마펫 선교사에게 보냈습니다. 얼마 후 돌아온 김종섭이 길선주에게 예수를 믿으라고 전도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김종섭은 길선주에게 하나님께 기도해보라고 했습니다.

길선주는 결국 마음에 번민을 가지고 깊은 밤 이른 새벽에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밤이 깊어 새벽 1시쯤 되었을 때였습니다. “정말 예수가 인류의 구세주인지 알려 주옵소서.” 하는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방안에서 청아한 피리 소리가 들리더니 갑자기 탕탕하는 요란한 총소리가 들렸습니다. 깜짝 놀라는 순간 하늘에서 “길선주야, 길선주야, 길선주야!” 하고 세 번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길선주는 너무도 무서워 고개를 들지 못하고 엎드린 채 “아버지여, 저의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저를 살려 주옵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자기의 죄를 회개하며 울부짖었을 때, 그의 몸은 불덩어리가 된 듯이 뜨거웠습니다. 그는 너무 기뻐서 감사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길선주는 새로 태어났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길선주는 두문불출하고 기도와 성경 말씀에 전력했습니다. 그는 성령으로 충만하여 그리스도와 만나고 하나님의 구원의 진리에 도취되었습니다. 그는 만나는 사람마다 예수님을 믿으라고 전도했습니다. 아버지에게 전도해서 세례를 받게 했습니다. 어머니와 아내에게 전도해서 세례를 받게 했습니다. 온 가족이 다 하나님 앞으로 돌아오게 되어 길선주는 너무 기뻐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길선주는 1898년 30세 때 평양 널다리교회의 영수가 되었습니다. 널다리교회는 그 이듬해인 1899년에 장대현으로 옮겼고, 1900년에는 2천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웅장한 예배당을 건축했습니다. 1901년에는 33세 때 장대현교회 장로로 장립되었고, 1902년 조사(전도사)가 되어 목회에 전념했습니다. 해박한 성경 지식과 유창한 설교, 기도와 성령 충만한 그의 목회 사역은 장대현교회의 급속한 부흥을 가져왔습니다.

몇몇 사람들과 새벽 4시에 일어나서 새벽기도회를 시작했습니다. 그것이 한국교회 새벽기도의 시작이었습니다. 드디어 1906년부터 부흥 운동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1906년 황해도 재령에서 길선주 조사가 부흥회를 인도하는데 회개 운동과 부흥 운동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1907년 1월이 되었습니다. 장대현교회에서 사경회가 열렸습니다. 전국 각처에서 1,500여 명의 신자들이 장대현교회에 모여 10일 동안 사경회를 가졌습니다. 그 사경회에 성령의 역사가 나타나고 회개 운동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2천 명 이상을 수용하는 장대현교회 예배당에 회중이 차고 넘치도록 모인 사경회가 성령에 휩쓸린 바 되어 회중 가운데혹은 소리쳐 울고, 혹은 가슴 쳐 통곡하며, 혹은 흐느껴 울면서 기도하고, 혹은 발을 구르고 자복하며, 혹은 춤을 추면서 찬미하니 소리소리 합하여 소리의 기둥은 번제단에 타오르는 불기둥같이 하늘로 떠올랐다.”

새벽기도를 인도하던 그는 갑자기 일어나 자기의 죄를 큰 소리로 자백하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아간과 같은 자입니다. 나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축복을 주실 수가 없습니다. 약 1년 전, 친구가 임종 시에 나를 자기 집으로 불러 말하기를, ‘길 장로, 나는 이제 세상을 떠나니 내 집 살림을 돌보아주시오.’라고 부탁했습니다. 나는 잘 돌보아드릴 터이니 염려하지 말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 재산을 관리하며 미화 100달러 상당을 훔쳤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일을 방해한 것입니다. 내일 아침에는 그 돈을 미망인에게 꼭 돌려드리겠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보고 듣는 앞에서 자기의 사적인 죄를 고백하며 참회의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통해 사람들은 각자 큰 소리로 울며 회개하기 시작했습니다.

길선주 장로는 1907년 평양신학교를 졸업하고 한국 최초 일곱 목사님 중의 한 분으로 안수를 받았고, 장대현교회 담임목사로 취임하고, 총회 전도국장이 되어 6년간 시무했습니다. 1908년 3월 1일에는 한국교회 역사상 목사로는 처음으로 세례식을 거행했습니다.

1919년 길선주 목사님은 3·1 운동 때 민족대표 33인의 한 분으로 독립운동에 앞장서시다가 2년간 옥고를 치렀는데, 옥중에서 기도와 성경 읽기와 전도에 전념했습니다. 출옥 후에는 전국을 누비며 부흥회를 인도하여 ‘한국의 세례요한’이라 불릴 정도의 탁월한 부흥사로 명성을 날렸습니다. 이후 그는 30년 여생 동안 전국에서 약 500회 사경회를 인도하는데, 1920년대 김익두 목사, 1930년대 이용도 목사 등과 함께 해방 전 한국의 대표적인 부흥사로 알려졌습니다.

길선주 목사님은 불교와 선도의 도사였지만, 29세 때 예수님을 믿은 다음부터 40여 년 동안 십자가의 복음을 전했는데, 380만여 명에게 복음을 전했고, 3천여 명에게 세례를 베풀었으며, 8백여 명을 목사와 전도사와 장로로 세웠고, 60여 개의 교회를 세웠으며, 한국 장로교회 첫 목사요, 최대 교회의 담임목사이자 한국에서 제일가는 부흥 설교자로 한국교회에 부흥을 일으킨 장로교의 아버지입니다.

김종춘 목사

참된 깨달음

하나님의 말씀으로 회복하자!

저는 신학원에 입학하기 전, 교육학 박사학위 과정에서 철학을 함께 공부했습니다. 당시 철학 속에는 상황에 따라 변화하는 ‘일리(一理)’는 있었지만, 영원히 변하지 않는 ‘진리(眞理)’는 없었습니다.

성경은 단순한 고전이나 종교 서적이 아니라, 창조주가 피조물에게 주신 유일무이하고 변치 않는 생명의 말씀입니다. 말씀은 우리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근원적인 해답을 명확하게 제시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성경을 보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제가 섬기는 수원교회는 오래전부터 저녁마다 김진 담임목사님과 함께 성도들이 말씀을 소리 내어 읽고, 기도하는 시간을 갖고 있습니다. 저 또한 함께 참여하면서 말씀을 소리 내어 읽는 중에 귀신이 나가고, 병이 치료되는 구체적인 체험을 하였습니다. 문제에 대한 답을 하나님께 간구할 때도 꿈이나 이상이 아닌 말씀을 읽는 중에 주셨고, 예배 때 선포되는 말씀으로 명확히 해결해주셨습니다.

처음에는 총회장 목사님의 설교 말씀이 마음속에 깊이 박히는 이유가 뛰어난 언어 구사 때문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날마다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습관을 가지다 보니, 목사님께서 은사적인 언어 능력뿐 아니라 정말로 성경 한 권이 몸에 배어 삶과 하나가 된 분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이 땅에 말씀을 주시고, 말씀이 육신이 되어 세상에 오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입으로 말하고,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받게 됩니다. 그 말씀이 우리 마음에 임하시면 우리가 능력 있는 자녀요, 제자가 됩니다. 말씀을 붙든 자는 구원의 확신과 예수를 체험하고, 예수의 증인이 되고, 능력을 얻습니다. 이제 우리는 날마다 성경을 묵상하는 경건의 습관을 회복해야 합니다. 날마다 말씀을 상고하는 회복이야말로 이 시대의 모든 위협을 극복하고 하나님 나라를 실현하는 가장 확실하고 중대한 초석이 될 것입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딤후3:16).

양은정 생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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