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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33호 목차 › 붕우칼럼

후회도 경험이다

1333호 · 2025-11-23

우리 교단에서 가장 연세가 많으신 권천국 목사님이 을지로에 새로 꾸민 사무실을 가보고 싶다는 의사를 정동성 목사를 통해 전하셨다. 나는 즉시 정동성 목사에게 ‘내일 모시고 오라’고 했다. 사실 내일은 중요한 사전 약속이 있었던 터였지만, 나는 정동성 목사에게 가서 잘 모시고 오라고 당부했다.

내가 이런 결정을 한 데는 연유가 있다.

20여 년 전인가, 한 권사님이 병원에 입원하셔서는 내게 전화를 했다. 목사님이 너무 보고 싶으니 한 번만 병원에 와 달라는 전화였다. 그때 나는 기도원에 있었던 터라, 권사님에게 서울 올라가는 길에 들리겠다고, 기도원에서 일이 있다고 핑계를 댔다. 그런데 그 권사님이 전화한 다음 날 돌아가신 것 아닌가. 아뿔싸! 나는 얼마나 회개하며 울었는지 모른다. 기도원에서 급한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는데 그 권사님의 마지막 소원을 못 들어준 것이니….

나는 다시 이런 후회를 안 하리라 다짐했다. 그래서 권 목사님의 요청을 미루지 않고 바로 시행한 것이다. 연세가 많으신데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까.

그렇다. 후회는 다시는 그렇게 안 하리라는 미래에 대한 질문이다. 또한 후회는 아픈 경험이지만, 미래의 자양분이 되기도 한다. 다윗을 보자. 그는 남의 아내를 취하려고 온갖 술수를 다 썼다. 그러나 하나님은 나단 선지자를 보내어 호되게 야단치셨고, 징계하셨다. 다윗은 학처럼 비둘기처럼 울며 회개하고 후회했다. 그 사건은 그에게 아픈 경험이었지만, 미래의 자양분이 되었다. 하여 늙어 동녀를 취할 수 있음에도 그는 다시 그 일을 행치 않았다.

베드로는 세 번 주님을 부인했다. 닭이 세 번 울자 그는 주님의 말씀이 생각나서 울며 후회했다. 주님은 그런 그를 찾아와 다시 기회를 주셨고, 그는 다시 후회하지 않으려고 목숨까지 버리며 주를 따랐다. 그러나 가룟 유다는 똑같이 후회했으나 일어서지 못하고 비극적인 종말을 고하지 않았던가.

계곡 없는 산이 없듯 후회 없는 삶은 없다. 다만 후회할 일을 했을 때 깨달으면 다시 일어날 수 있다. 개돼지처럼 씻겨놔도 다시 그 자리에 눕는 자가 되지 말고, 후회가 더 나은 미래가 되는 발판이 되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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