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일어난 일
나에게 일어난 일
약 한 달 전, 미리 잡혀있던 일정을 취소해야 하는 상황이 생겼습니다. 취소 사유를 그대로 말하기에는 사생활을 언급해야 해서 다른 이유를 찾아야 했었지요. ‘내가 급체했다고 이야기하자! 남편과 나는 한 몸 아니겠어?’ 며칠 전 급체했던 남편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자, 이것이 이유가 되겠다 치부하며 일정을 취소하였습니다.
그날 저녁 식사를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속이 꽉 막힌 느낌이 들더니 갑자기 명치 쪽에 콕콕 찌르는 통증이 나타났습니다. 귀신을 쫓고 소화제를 먹어도, 다음 날 한의원에서 침을 맞아도 차도는 없었습니다.
그렇게 이틀이 지나가고 저는 여전히 속이 아픈 채로 기도 모임에 나갔습니다. 한참을 기도하던 중, 성령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네 말이 너를 아프게 했단다.” 순간 어안이 벙벙해진 저는 기도를 멈추었고, 이내 눈물이 왈칵 터져 나왔습니다. ‘깨닫지 못하는 나를 보시고 얼마나 답답하셨으면 여쭤보지도 않았는데 직접 말씀해 주셨을까!’ 그제야 깨닫고 나의 어리석음을 회개하였더니 귀신이 떠나가고 씻은 듯이 나음을 체험하였습니다. 할렐루야!
며칠간 저를 돌아보다가 ‘잔꾀 부리지 말라’는 총회장 목사님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돌이켜보니 저는 그 말씀을 제대로 이해하지도, 마음에 새기지도 않았었지요.
‘남편과 나는 한 몸, 그가 아프면 나도 아픈 것’, 이것이 지혜라 여기며 그럴듯하게 포장했던 것이 잔꾀 부린 것임을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게다가 ‘급체하였다’라는 부정의 말까지 더하였으니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한다’
(민14:28)는 말씀이 어찌 아니 이루어질까요? ‘잔꾀 부림’과 ‘부정의 말’의 대가가 너무나 혹독하다는 것은, 필생의 교훈으로 남을 것입니다.
‘성공한 자들은 언어가 다르다, 너는 부정의 말을 뿌리째 뽑아버리라’는 목사님의 설교를 기억하시지요? 생사화복이 바로 우리 혀에 달려있음을 명심하고 매사에 복 받을 말, 좋은 말만 뿌려 삶이 윤택해지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읍시다!
“사람은 입에서 나오는 열매로 하여 배가 부르게 되나니 곧 그 입술에서 나는 것으로하여 만족케 되느니라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그 열매를 먹으리라”(잠18:20~21).
김진실 사모
여러분의 ‘비’는 무엇입니까?
저는 비를 참 좋아합니다. 마침 글을 쓰는 지금도 비가 오고 있습니다.
단연 가장 좋은 것은 비를 피할 수 있는 곳에 앉아서 빗소리를 들으며 비가 오는 것을 보는 것입니다만, 비를 맞는 것도 좋아합니다. 귀갓길에 비가 오면, 일부러 비를 맞으며 가기도 하고, 일부러 차를 비 맞는 곳에 세워놓고 차에서 자기도 합니다. 공부를 하거나 집중해야 할 일이 생기면 이어폰을 끼고 빗소리를 재생하고 작업을 하기도 합니다. 그만큼 저는 비를 좋아합니다.
제가 비를 너무 좋아하기에 비가 오는 날이면 함께 있는 사람들에게 물어봅니다. ‘비 좋아해?’ 그럼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렇게 대답합니다, ‘빗소리 듣는 건 좋아하는데 어디 갈 때 비 오는 건 싫어.’라고 대답합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예수님을 사랑하는 모습이 저런 모습은 아닐까?’
‘비를 좋아하는 나’는 사랑하기에 비의 모든 것을 즐깁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사랑하는 나’는 예수님으로 인한 모든 것을 사랑하고 즐기고 있는지….
비를 사랑해서 비가 올 때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비를 즐기지만,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그 예수님을 위하는 일을 온전히 즐기지 못할 때도 있었고, 예수님을 알기 위한 노력도 턱없이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
요한복음 14장 21절에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가 나를 사랑하는 자’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그런 자에게 하나님도, 예수님도 사랑을 나타내신다고 하십니다. 저에게 비와 같은 것이 모두에게 있을 줄로 압니다. 그것을 좋아하고 사랑하는 것처럼, 아니 그것보다 더욱 예수님을 사랑하고 있는지 돌아보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어제보다 오늘, 오늘보다 내일, 늘 그 무엇보다 더 예수님을 사랑하는 저와 우리 예수중심교회 성도 여러분이 되길 소망합니다.
윤에녹 생도
dbsdlsgh12345@naver.com
활시위를 떠난 화살
한번 활시위를 떠난 화살은 되돌아오지 않고 목표만을 향한다. 또한, 한번 총구를 떠난 총알도 직진하여 목표물을 맞춘다. 총알 맞은 구멍은 작으나 점점 나선형 구조로 회전하며 뒷부분을 온통 너덜너덜하게 파괴하며 관통한다.
성경의 원시복음으로서의 창세의 약속(창3:15)은 처음엔 미약한 구멍처럼 보였으나 점진적으로 직진하며 인류의 전 역사를 관통하였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 약속이 효과적으로 성취(히10:1~10)되었을 때 우리를 구원하심에 필요충분조건이 되셨다. 더 이상의 다른 조건은 필요 없다. 성경 전체가 말하는 귀결은 결국 예수 그리스도다. 예수 중심으로 직선적으로 전개되는 계시가 성경이다. 구약으로 다시 윤회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세상을 구원하시기로 그 이전 모든 역사를 준비하셨다. 그래서 구약의 역사는 그리스도의 ‘준비로서’ 의미가 있지, 구약 자체로 의의가 있지는 않다. 그래서 구약의 모든 제사 제도나 의식과 형태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위한 예표로서 그림자에 불과하다. 그림자의 원형이요 실체이신 예수가 오셨다. 구약의 이스라엘은 역사 자체로서의 의의가 있는 것이 아니기에 그리스도 없이 그것은 아무 효과가 없다. 그러니 그리스도가 없으면 그리스도교가 아닌 ‘유대주의’가 되고 만다. 또한 그리스도에 더해서 율법의 행위를 구원받음에 자꾸 추가하려고 하면 ‘다른 복음’이 되고 만다. 그러니까 구원의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뿐이다. 그분의 인격과 사역을 믿을 때 구원이 임한다.
재림 때, 예표였던 원점에다 성전 짓고 구약의 피 제사를 다시 회복한다는 주장을 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공효를 무효화시키는 것이다. 날아가던 화살과 총알이 유턴하여 원점으로 다시 되돌아가는 격이다. 성경은 실체에서 다시는 그림자로 되돌아가지 않는다. 최근 들어 이·팔 전쟁을 통해 종말 성취를 운운하는 이야기들이 무성하다. 아니라고 총회장 목사님께서 단언하셨다.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구원은, 예표였던 구약의 그림자로 되돌아가지 않는 구원이다. 새 언약이신 예수께서 영적 새 인류를 위해 마련하신 십자가 구원의 방식이 전부이다.
송직화 목사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기까지
얼마 전 개그우먼 이성미 씨의 간증 영상을 보았다.
힘들었던 시절 아이들을 데리고 캐나다로 이민을 갔고 그곳에서의 이야기가 담긴 영상이었다. 한국에 남아있던 남편과 사이가 좋지 않아 전화로 다투고 그 모든 화를 아이들에게 풀었다고 한다. 유학 생활을 성실하게 하지 않는 아들에게 매일 욕을 하고 기도하러 가서 “하나님, 아들을 좀 바꿔주세요. 이 아들 때문에 정말 못 살겠습니다.”라고 울며불며 기도했다고 한다. 그렇게 기도를 하고 집에 와서 안 바뀌어있는 아들을 보며 “이 쓸모없는 놈아, 쓰레기 같은 놈아.”라고 또 욕을 하고.
그러던 어느 날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다고 한다. “네가 말하는 대로 네 아들을 만들어줄까?” 음성을 듣고 너무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기도를 하는데 환상 중에 피를 흘리며 갈기갈기 찢긴 아들의 모습을 보았다고 한다. 하나님께 잘못을 회개하며 용서를 구하고 다시는 욕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을 한 후 아들을 대했더니 아들이 바뀌기 시작했다. 엄마가 바뀌니 아들이 바뀌었다. 엄마와 같이 새벽 기도를 나가고 엄마와 함께 앉아 찬양예배를 드렸다. 엄마의 변화를 통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요즘 TV를 보면 아이들의 문제행동에 대한 솔루션을 주는 프로그램들이 많다. 보다 보면 동일하게 나오는 소리가 있다.
‘문제 아이는 없다. 문제 부모가 있을 뿐!’이라고.
대부분의 문제는 부모에게 있었고, 그 문제로 인해 아이에게는 문제 행동이 나타난 것이었다. 처방해주는 솔루션에 따라 부모가 변화하니 아이들의 문제 행동이 사라지는 것을 보며, 부모가 아이를 어떻게 양육하느냐에 따라 아이가 성장한다는 것을 다시끔 깨닫게 된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참 별일들이 많이 있다. 그러다 우리 부모님들은 우리를 어떻게 키우셨나 대단하다는 생각도 든다. 아이의 말을 잘 들어주고 공감해주고, 다정한 말과 친절한 모습으로 대해야 하는데 그게 마음처럼 쉽지 않다. 했던 말을 하고 또 하고 반복하며, ‘도대체 언제까지 해야 하지?’라는 생각도 들지만, 계속해야 한다. 그러면 아이도 성장하고, 부모도 성장한다.
아이는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내 소유물이 아님을 늘 깨닫는다. 양육을 한다는 것은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나에게 맡겨주신 아이를 하나님의 방법대로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정서적으로 잘 키워내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하나님이 아이 삶의 주인되심을 아이가 깨닫도록 도와줘야 하는 것이다. 부족한 엄마지만 그래도 좋은 엄마가 되기를 기도하고 노력하면서, 오늘도 하나님께 지혜를 구해본다.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갈4:19).
정효경 집사
인간의 죽음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입니다. 영적인 지식이 없는 사람들은 집에서 키우던 동물이 죽었는데 좋은 나라 가게 해달라고 기도를 부탁하지만, 동물들은 영혼이 없기 때문에 죽으면 끝입니다. 다시 태어난다는 윤회설은 인간의 상상에 의해 만들어진 이론입니다.
그런데 인간은 죽은 뒤에 심판이 있어, 예수님을 믿는 자들은 영생복락의 천국으로 가고, 믿지 않는 자들은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지옥으로 가게 됩니다. “그런 법이 어디 있느냐?”라고 반문할지 모르겠지만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법입니다. 미국에 들어가려면 미국의 법대로 비자 발급을 받아야 하는 것처럼 천국도 하나님의 법대로 예수님을 믿어야 갈 수가 있습니다.
노후를 준비하기 위하여 땀을 흘려 일을 하지만 ‘고생 끝나면 죽는다’는 옛 선친들의 말씀이 틀린 말이 아닙니다. 시종을 알지 못하는 인생이기에 죽음은 부지불식간에 찾아옵니다. 그래서 노후를 준비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사후를 준비하는 일이 더욱더 중요한 것입니다. 아무리 선한 일을 많이 했다고 하더라도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면 모든 것이 허사입니다. 지체하지 말고 예수님을 믿고 영원한 나라를 준비하는 것이 최고의 지혜입니다.
일상의 삶이 힘들고 고달프다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이 있는데 더 고통스런 영벌의 지옥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악한 마귀의 유혹에 속아 넘어가지 말고 예수님께로 나오기만 하면 참된 평안과 자유를 얻을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
상화평 목사
주야로 말씀을 묵상하려면
복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성경은 ‘여호와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라고 말합니다.
말씀을 가까이해야 한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말씀 읽는 습관이 몸에 배지 않는 이상 주야로 말씀을 묵상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방해 요소도 많습니다. 매일 눈과 귀를 사로잡는 새로운 콘텐츠가 홍수처럼 쏟아집니다. 흥미로운 볼거리와 즐길 거리가 너무 많습니다. 웬만한 결단 없이는 유혹을 이겨내기가 어렵습니다. 마음을 굳게 먹지 않는다면 말씀 묵상은 뒷전으로 밀리고 맙니다.
매번 결단하는 것은 힘이 듭니다. 그러나 결단하지 않아도 행동할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바로 습관을 만드는 것입니다. 습관은 지속하는 힘이 있습니다. 예수님도 습관 따라 기도하셨습니다. ‘습관이 운명을 좌우한다’는 총회장 목사님의 가르침처럼, 말씀과 기도를 지속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그러나 아직 습관이 잡히지 않아 성경을 꾸준히 보는 것이 쉽지 않다면 개인적으로 도움이 되었던 몇 가지 방법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첫 번째로, 우선순위를 정했습니다. 매일 성경 읽기를 최우선으로 두고 성경을 보기 전에는 아무것도 먹지 않기로 결심했습니다. 말씀을 읽어야 식사를 할 수 있다는 생각에 눈을 뜨면 성경을 펴고 앉게 되었습니다. 두 번째는 시간과 장소를 정했습니다. 매일 아침, 이동 시간은 오로지 성경만 읽기로 다짐했습니다. 시간을 따로 구별하니 꾸준히 말씀을 보는 것이 수월해졌습니다. 마지막으로는 모임을 만들었습니다. 혼자 읽다 보면 마음이 해이해지기 쉽습니다. 하지만 지체들과 함께 정한 분량을 읽다 보니 동기부여가 되고 꾸준히 읽는 데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세상이 주는 즐거움은 순간이지만 하나님 안에서 누리는 기쁨은 영원합니다. 말씀 속에서 발견하는 기쁨은 세상의 재미와는 비교할 수 없습니다. 세상은 우리의 눈과 귀를 사로잡아 말씀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듭니다. 그러나 가지는 나무에 붙어야 살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안에 거할 때 세상에 휩쓸리지 않고 굳건하게 설 수 있습니다. 한 달 남짓 남은 2023년, 결단하여 말씀을 더욱 가까이하기를 소망합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12:2).
전소희
오직 예수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 아버지를 만난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과 십자가에 달려 흘리신 보혈로 우리 죄가 사하여진 것을 믿으면,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죽은 후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간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이유이다. 하나님께 가기 위해, 우리 죄를 사함 받기 위해 예수 외에 다른 그 누구도 필요치 않을뿐더러 사람은 우리 죄의 문제를 해결해주지 못한다. 성모 마리아, 성인, 능력 있는 목회자를 보고 하나님이 우리 죄를 사해주시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보고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신다. 그래서 자칭 하나님 어머니, 자칭 성령님이라는 자에게도 미혹되지 말아야 한다.
예수님을 알게 된 후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성령을 받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서로 사랑하며 복음을 전하는 일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 우리는 예배를 드린다. 예배 안에는 찬양과 기도와 말씀이 있어 우리 영이 성장하기 때문에 유아부터 성인까지 크리스천에게는 예배가 가장 중요하다. 그리고 예배 뒤에는 교제와 봉사가 있어 교회를 믿음 안에서 더욱 돈독하게 해준다. 다만, 교제와 봉사보다 늘 예배가 먼저 우선되어야 하고, 예배에 방해 요소가 되지 않도록 유념해야 한다. 우리는 친목 모임이나 회사 조직이 아니라 하나님을 섬기는 교회이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예수님에 대한 설교가 좋다. 하나님을 소리 높여 찬양하는 것이 좋다. 감사의 대상이 누구인지 알고 감사해서 좋다. 내가 어디서 왔고, 또 어디로 가는지 알고 있어 좋다.
나는 내가 크리스천이어서 참 좋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로마서 10:9).
박찬영 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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