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역 37주년 축하글 - 내가 본 이초석 목사
총회장 이초석 목사님의 성역 37주년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성역 37주년을 축하드리며
성역 37주년, 3년만 죽도록 목회하다가 가시겠다고 그 좋던 몸이 배가 등에 붙어 갓난아기들 기저귀용 광목을 구해 배에 둘둘 두르고 설교하시던 목사님. 농부가 무슨 멋을 부리겠냐며 겉옷을 벗어던지고, 소매를 걷어붙이고, 바지까지 걷고 온몸이 물에서 건져낸 사람처럼 땀으로 흠뻑 젖어 구두 속이 땀으로 찌걱거리고, ‘축원합니다’ 하시는 손끝에서 땀이 뿌려지도록 설교하시던 목사님. 그야말로 눈 덮인 산야, 물 없는 사막을 굽이굽이 목마른 사람이 벼랑길 마다않고 시냇물 찾듯이 영혼을 찾아 이역만리 목숨을 내걸고 다니던 목사님.
어느덧 37년, 생각만해도 감회가 어린다. 주마등처럼 영상이 돌아간다. 우리가 모르는 속사정이 그 안에 얼마나 많았을까. 이제는 10주년, 20주년, 30주년을 넘어 40주년을 향해 가는 길목에 어느 날 나오셔서 문득 말씀을 던지셨다.
“내 인생의 화폭에는 아직도 여백이 많이 남아 있다.”
모든 인생이 하나님께 가기 전에는 화폭에 여백이 있는 것인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여백이 자기가 채워 마무리가 필요함을 인식하지 못하고 여백을 그대로 둔 채로 화폭을 마무리하고, 노년에 또 다른 새로운 그림을 그리려 한다. 그리고 만만치 않은 생활에 탐탁지 않은 그림을 대충 그리다가 미완성된 두 개의 그림을 남겨놓고 떠나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모세는 끝 날까지 화폭을 가득 채워 아름다운 그림 하나를 남기고 갔다. 다윗도, 베드로도, 바울도, 우리 주님도 하나님이 주신 한 개의 화폭을 최선을 다해 완성하고 가셨다.
목사님은 한 마디로 선각자다. 그렇게 수많은 주의 종이 가지 않은 길을 개척하며 오셨다. 누가 교회 없이 전 세계를 돌았을까. 몇 명이나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전 세계를 다니며 운동장에서, 광장에서, 노천 길을 막고, 체육관에서, 예식장에서, 학교 교문 기둥 위에 올라서서 집회를 했을까.
“사역도 주님이 그만두라실 때 그만둬야지, 내가 어떻게 그만둔다고 하냐?”는 말씀이 가슴에 깊이 박혔다. 아! 종의 모습은 그런 건데 사람들이 종의 주제를 파악하지 못하고 종이 주인인 체하며 자기 마음대로 하고 안 하고를 결정한다. 주인에게 가서 제 마음대로 ‘이제 쉬겠습니다. 그만두겠습니다.’ 한다. 과연 종에게 그런 권리가 있는 걸까. 깊은 깨달음을 받고 주님이 그만 쉬라하실 때까지 최선을 다하는 것이 우리의 할 일임을 다짐해본다.
며칠 전에 나이가 좀 드신 여전도사님이 “우린 언제까지 하나요?” 하고 묻기에 1초도 생각 안 하고 “죽는 날까지요.”라고 답했다. 주인이 쉬라하는 날까지임을 내 속에 꽉 채워놓았나 보다.
목회의, 목회자로서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가시는 목사님의 뒤를 기쁨으로 따르는 것 자체가 복이다. 아직도 여백이 많은 화폭을 열심히 채워가실 우리 목사님. ‘파이팅!’ 외치며 따라가겠습니다. 더욱 건강하시고, 성역 37주년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이시대 목사
제가 가장 축복받은 사람입니다
“나보다 더 축복받은 사람 있으면 나와 보세요.”
저는 한창 인생의 꽃인 30대 후반까지 무질서하게 꿈도 없이 되는대로 살았습니다. ‘오십 살까지만 살다가 가야 되겠다.’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말하고 다녔습니다.
목사님을 만나지 못했다면 제가 지난날 뿌리던 말대로 이미 땅속에서 썩어 없어진 몸이 되었을 텐데 복된 목사님을 만나 함께 동역하며 영생의 길을 이루어가니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제가 목사님을 처음 뵌 것은 잠실에서 KBS88체육관으로 이전하면서 이미 예수중심교회 성도가 된 아내와 어린 자녀(7살, 3살)를 철야예배에 데려다주러 왔다가 붙잡히게 되었습니다.
저는 가톨릭 신자였는데 예배에 몇 번 참석하다보니 열정적으로, 몸으로 최선을 다하며 빠르게 전하는 목사님의 말씀이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귀신 추방과 성령의 역사를 통해 많은 사람이 치유되는 것을 보면서 믿음이 자라났고, 제 믿음을 키워준 목사님이 좋았고, 자랑스러웠습니다. 제게는 마치 예수님 같았습니다.
그 초신자 시절, 저는 제가 이 교회에 다니고 있다는 것만으로 기뻤습니다. 아무리 외부에서 ‘왜 하필이면 이단교회를 다니냐?’ 하고 수많은 이야기를 했지만 귀담아 듣지 않았습니다.
제가 본 목사님은 높지만 늘 낮은 자세로 겸손하게 몸으로 실천하며 최선을 다해 양떼를 섬겨주시는 분이었습니다. 그래서 저 또한 집회가 배설되면 교구 식구가 함께 모여 비디오 전도, 현수막 달기, 전단지 뿌리기 등을 기쁜 마음으로 할 수 있었습니다.
저에겐 재앙인 것 같았지만 평안이고 장래의 소망으로 이끌었던 사건이 있었습니다. 강남 수서에서 동아일보 신문지국을 운영하고 있을 때 새벽에 아파트 단지에 배달할 신문을 내려놓는데 한 차량이 저를 덮쳤습니다. 이 사건으로 인해 저는 제 왼쪽 무릎의 연골이 다 파손되어 3급 장애를 받게 될 정도로 큰 사고였습니다. 저는 급히 삼성의료원으로 옮겨졌고, 수술을 받기 전에 목사님으로부터 전화가 와서 귀신을 쫓고 기도를 해주셨습니다. 목사님의 기도 중 반깁스를 한 무릎 부분이 찌릿찌릿 전율이 흐르고 무언가 맞춰지는 것을 체험했고 아프지도 않았습니다.
그때 저의 고백은 ‘덤으로 사는 인생, 하나님을 위해서 살겠다.’라는 찬양이 나왔습니다.
그 후에 수술을 받았고 몇 개월 동안 입원을 했는데 통증이 없었고, 의사의 진단은 5년 후에 재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는데 20년이 지난 지금까지 잘 지내고 있습니다. 목사님을 통하여 예수의 흔적을 가진 것이지요.
이후 늦둥이 3명의 딸을 위해 유학을 하게 됐고 영어권인 피지를 거쳐 호주에 살면서 신학교를 졸업하게 되었으며, 저는 예수중심교회에서 29기 목사 안수를 받았습니다.
해외에서 목회해보니 제 여러 가지 부족한 모습들을 발견합니다. 깨닫기는 잘 깨닫는데 뒷심이 부족한 면이 있습니다. 하지만 목사님의 기필코 정신을 생각하며, 목사님을 본 삼아 다시 일어나곤 합니다.
생각해보면 제 삶속에 하나님께서 이 모든 축복과 은혜를 주신 것은 목사님의 꿈에 동참하여 세계를 향한 하나님의 일을 하라는 뜻이 아니겠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제게는 꿈이 있습니다. 호주에는 힐송(HILLSONG)이라는 유명한 찬양단이 있습니다. 저는 힐송 찬양집회처럼, 예수중심교단의 찬양단과 함께 찬양 집회 및 성령의 역사 집회를 시드니 올림픽 주경기장에서 총회장 목사님을 모시고 집회하는 것입니다. 바랄 수 없는 것을 바라라는 목사님의 말씀처럼, 저 또한 큰 비전을 바라보고 매사에 정진할 것입니다.
목사님의 성역 37주년을 진심으로 축하드리고, 저 또한 목사님의 꿈에 동참하여 주의 일을 하겠습니다. 할렐루야.
시드니예수중심교회
문정훈 목사
내가 만난 이초석 목사님
“저희가 가버나움에 들어가니라 예수께서 곧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시매 뭇 사람이 그의 교훈에 놀라니 이는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세 있는 자와 같고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막1:21~22)
내가 처음 이초석 목사님의 설교를 들었을 때 받은 느낌은 바로 위의 말씀(막1:21~22)에 나오는 뭇 사람들과 같았다. 이전의 다른 목사님들과 달리 실제로 전능하신 하나님을 아버지로 믿는, 권세 있는 하나님의 아들과 같이 확신에 가득 찬 당당한 선포였고 회의와 불신에 가득 찼던 나의 심령을 흔들었다.
나는 하나님을, 예수님을 믿지 않았다. 오히려 예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을 무기력한 위선자로 여겼다. 특히 라는 책을 읽어본 후로 부흥사 목사를 사기꾼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아내와 사랑에 빠지고 결혼하면서 아내를 존중하기 위해 주일예배는 참석해주기로 약속했고,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3년을 주일예배에 참석했지만 찬송은 장난같이 불렀고 성가대 여 성도들 얼굴을 감상하는 시간에 불과했다. 그리고 막상 목사님 설교가 시작되면 잠에 빠져들었다가 신기하게도 설교가 끝나면 잠이 깼는데 일주일간의 피로가 싹 가시는 느낌이었다. 하나님 말씀에 은혜를 받아 영혼의 피로가 가시는 것이 아니라 단잠을 잤기 때문에 육신의 피곤함이 사라지는 셈이었다. 그리고 재미있는 권투경기 중계가 있는 날이면 그 경기를 보기 위해 아내만 교회에 보내곤 했다. 아내가 십일조를 하면 화를 내고 주일헌금 정도나 내라고 강요하곤 했다.
그런 식으로 3년의 기간이 지나니 믿음도 없이 주일예배를 드리는 나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졌고 시간낭비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오류동에서 광명시 하안동 주공아파트로 이사한 것을 계기로 아내에게 제안을 했다. ‘3년 가까이 당신을 위해 주일예배를 참석해주었으니 이젠 나도 할 만큼 한 것 아니냐? 이렇게 믿음 없이, 아무 감동도 없이 예배에 참석하는 것을 나는 더 이상 견딜 수 없다. 그러니 앞으로 매주 교회를 바꾸어 다섯 번만 주일예배를 드려보고, 그래도 믿음이 생기지 않으면 나는 예배참석을 중단하고 당신만 교회 다니는 것으로 하자’고 제안했고 아내도 동의했다.
그래서 매주 순례하듯 주위 교회들의 주일예배를 바꾸어 한 달에 걸쳐 참석했으나 여전히 믿음이 생기지 않았다. 그러다가 주일 오후에 아파트 주위를 산책하던 중, 집 근처의 인복유치원 지하에 ‘철산예루살렘교회’라는 이상한 이름의 교회를 발견하여 웬일인지 주일예배도 아닌 저녁예배를 혼자 우연히 참석하게 되었다. 예배의 모습은 다른 교회들과 달리 무척 시끄럽고 방언으로 하는 통성기도도 무척 거슬렸으며 목사님도 인상이 날카롭고 예사롭지 않았지만 막상 설교를 들어보니 다른 목사님들과 달리 확신에 차고 권세가 있어 보였다.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께서 실제 살아계시며 역사하심을 어린 아이와 같이 단순하게 믿고 선포하는 모습에 마음에 큰 감동이 밀려왔고 계속해서 설교를 듣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아내에게 말하여 돌아오는 주일에는 철산예루살렘교회의 주일예배에 참석해보자고 권하였다. 아내는 지하교회이고 교회 이름도 이상하다며 꺼려했지만 예배에 소극적이던 내가 먼저 나서서 예배에 참석하자고 하는 모습을 보고는 동의하게 되었다.
그 이후로 한주, 한주 예배를 드리며 복음에 회의적이던 내 마음에 믿음이 생기기 시작했고 박수치는 찬송에 어색해하던 내가 나도 모르게 박수치며 찬송하게 되었다.
그러던 차 1985년 말에 4일간에 걸쳐 부흥회를 외부강사를 초빙하지 않고 담임인 이초석 목사님께서 직접 인도하신다는 광고를 듣고 참석을 결심하게 되었다. 부흥회를 통하여 예수님 이름으로 귀신이 쫓겨나는 것을 여러 번 목격하면서 그동안 성경을 읽으면서 믿어지지 않아 건너뛰던 복음서의 축사장면도 사실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고, 모든 성경말씀을 글자 그대로 진리로 받아들이는 계기가 되었다. 부흥회를 마치고 나는 아내에게 이제 정식으로 예수님을 믿기로 했으니 새해 첫 주부터 십일조헌금도 드리자고 제안하니 아내도 무척 기뻐하였다.
86년 새해부터는 그동안 부담스러워하던 남선교회 모임과 구역예배에도 열심히 참석하였으며, 바쁜 회사일로 수요예배는 참석하지 못했으나 밤 11시에 시작하는 금요기도회는 참석하여 밤을 꼬박 새우고 아침에 회사로 출근하여도 기쁨이 넘치는 신앙생활이 시작되었다. 회사에서도 내가 그리스도인임을 자랑하게 되었고, 점심식사를 빨리 마치고는 30분정도 성경통독 모임을 제안하여 회사의 그리스도인들뿐만 아니라 불신자들도 참여하게 되었고, 얼마 후에는 교회에 출석하는 이들도 생겨났으며 교회생활 중 시험이 들어 교회를 떠났던 사람들도 이 모임에 참석하여 성경을 읽다가 다시 신앙이 회복되는 이들도 생겨났다.
본래 나는 사람들 앞에서 말하거나 노래하는 것을 꺼려하는 소심하고 내성적인 성격이었는데 예수님을 믿고 성령 충만해지자 자신 있게 복음증거도 하게 되었고, 얼마나 열정적으로 박수치며 찬양을 했는지 어느 성도분이 나의 찬양하는 모습을 보고 은혜 받았다고 할 정도였다. 그 후 하나님의 섭리에 따라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목사로 교회를 섬긴지도 벌써 20년이 지났다. 아쉽게도 게으름을 극복하지 못하고 이초석 목사님의 강력한 기도와 불같이 토하는 설교에는 한참 미치지 못하지만 성경말씀에 대한 전폭적 신뢰를 본받아 임마누엘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복음의 참 기쁨을 누리고 있다.
세상에서 나만큼 성공한 사람, 행복한 사람은 있을지라도 나보다 성공한 사람, 나보다 행복한 사람은 없다고 자신 있게 선포하며 누리고 있다. 출석 성도가 적은 소형 교회의 목회자이고 재산도 별로 없지만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예수님께서 세상 끝 날까지 함께 해주시는 임마누엘의 축복보다 더 큰 성공과 행복이 어디 있겠는가!
이러한 임마누엘 예수님을 성경대로 믿고 누릴 수 있도록 믿음의 통로가 되어 주신 이초석 목사님께 감사드립니다.
만민의교회
한흥택 목사
나는 경기도 안산에서 모 기성교회 권사로, 그 교회 재정과 차량 봉사 남전도 회장으로 담임목사님에게 총애를 받으며 신앙생활을 했지만, 천국이 있는지 지옥이 있는지도 모르며 교회를 다녔다. 그러던 중 교회에서 기독교방송의 ‘새롭게 하소서’ 프로그램을 녹화한다며 한 사람씩 전도해오라는 명이 떨어져 평소 알고 지내던 신실한 한국예루살렘교회 집사님을 한 번만 오시라 전도해 금요예배에 함께했다.
얼마 후 그 집사님이 ‘권사님 말 듣고 권사님 교회 한 번 갔으니 이번엔 이초석 목사 전도집회 한 번만 가자’는 것이다. 거절할 수 없어 한 번 참석했는데 지금까지 죽은 예수만 믿다가 살아계신 예수를 나의 두 눈으로 목도하게 되었다. 귀신이 소리를 지르며 떠나고, 소경이 눈을 뜨며, 각색 병이 치료되는 그야말로 말로만 듣던 성령의 역사를 보게 된 것이다. 나는 한 주간 집회 참석을 하고 “천국이 아무리 좋아도 내가 못 가는 천국이라면 내게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라고 집사람에게 말하고, 그 주부터 교회를 옮겨 지금까지 30여 년을 목사님과 함께하고 있다.
내가 캐나다 토론토예수중심교회를 섬길 때 총회장님의 밴쿠버 집회가 있었다. 10만 명은 족히 들어갈 큰 운동장에 500여 명가량이 모였다. 얼마나 힘든 집회였을까 짐작이 갈 것이다. 말씀이 끝나고 귀신을 쫓으며 안수를 하실 때 나는 옆에서 돕고 있었다. 그때 한 백인 여인이 병든 남편을 데려와 안수한 것 아니라 때려눕혔다며 군중 속에서 한동안 소리를 질렀다. 옆에서 보기에 민망할 정도다. 그러나 목사님은 안수받기를 원하는 성도들을 빠짐없이 축복하셨다.
숙소로 향하는 자동차에 모시고 얼마나 힘드실까 싶어 빨리 가자고 운전을 재촉했다. 그때 목사님께서 ‘잠깐’ 하시더니 기도를 하신다. ‘하나님, 그 여인이 몰라서 성령을 훼방한 것이니 용서해주세요. 그리고 그 남편을 치료해주세요.’라며 진심으로 간절히 기도하시는 것이다. 나는 그때 깨달았다. 하나님께서 목사님을 왜 쓰시는지! 다시는 보지도 못할 수 있는 그 여인을 위해 진심으로 기도하시는 양을 사랑하시는 그 모습! 한 사람도 실족치 않기를 원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목사님을 통하여 나는 보았다.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를 실천하시는 목사님을….
나는 그때 다짐했다. 나도 목회 현장에서 나를 모욕하는 자를 기도하고 저주한 자를 축복하겠노라고. 그리고 지금까지 변함없이 예수님을 사랑하고 양 떼를 사랑하시는 목사님과 함께하고 있다. 하나님이 쓰시는 목사님에게 배우며 목회하는 우리는 큰 축복이 아닐 수 없다. 목사님 감사합니다. 세계 선교와 목사님 건강을 위해 기도로 돕겠습니다.
배방예수중심교회
임택함 목사
이제는 이해합니다
제가 초등학교 때 총회장 목사님은 집에서 내쫓기셨습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네가 내 뱃속에서 나왔냐? 아니면 하늘에서 떨어졌냐?”며 안방에서 식사하시던 그릇들을 던지며, 소리치며 몹시 화내시던 할머니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총회장 목사님은 이미 나이 30대에 정원이 있는 큰집에, 좋은 차에, 건설회사와 육영사업으로 크게 성공하셨던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왜 갑자기 모든 것을 버리고 목회 길을 가셔야했는지 제가 목회자가 되기 전까지는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초등학교, 중학교 내내 매년 전학과 열세 번 이상의 이사를 다녀야했던 기억은 한때 삶에서 가장 잊고 싶은 시간들이었습니다. 인복유치원 옥상 온실에서 살 때는 비만 오면 거실에 물이 차올라 물을 퍼내야 했던 때도 있었습니다.
온실에서 살던 어느 날, 갑자기 아버지께서 저희 형제를 부르시며 “하늘을 봐! 예수님께서 가시면류관을 쓰시고 나를 보고 계신다!”라고 외치셨습니다.
그때 나가서 하늘을 보니 제 눈에는 작은 구름 한 조각만 보였습니다. “그러니까 이단이라고 하지.” 저는 혼잣말을 했었습니다.
그 후로 저는 아버지를 1년에 한두 번 뵙기가 힘들었습니다. 제가 20대가 되었을 때야 왜 아버지께서 오랜 시간 우리를 보지 못하신 이유를 말씀해 주셨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전국을 베스타(승합차)를 끌고 그 안에서 자며 라면으로 식사를 해결하고 각 지방에 있는 교회들을 두루 다니시면서 복음을 전하기 원하셨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그때 저는 왜 그렇게까지 해야 했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항상 저는, 아버지는 가정에서는 0점이지만 목회사역에서는 100점이라고 말하곤 했습니다. 왜냐면 그만큼 주님의 일에 진정 미쳐 계셨기 때문입니다. 중학교 때는 성도들에게만 친절하시고 베푸시는 아버지께서 아들들에게 특히 무관심하다는 생각에 “아버지! 성도와 자녀가 물에 빠지면 누구를 건지실 건가요?”라고 불평하듯 아버지께 물었던 기억이 납니다. 아버지는 1초의 주저함도 없이 “성도야.”라고 말씀하시는데 정말 어린 마음에 화가 났던 저를 기억합니다. 그 후 아버지는 제게 “내가 성도를 구하면 하나님이 너를 분명 건져주실 거야.”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때는 이해할 수 없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와 같은 목회 길을 걷게 되었을 때 비로소 이전의 모든 아버지의 삶을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2010년 교회사역을 시작하면서부터는 매일 ‘어떻게 하면 아버지의 목회를 따라갈 수 있을까?’ 하며 자신을 돌아보게 되는 제가 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본 총회장 목사님은 우선순위가 분명하셨습니다. 목회자가 돼서야 왜 총회장 목사님에게서 능력이 떠나지 않는 이유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바로 예수님 제일 중심으로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온전히 믿지 못하셨다면 지금의 예수중심교단도, 지금의 저도 없었을 것입니다.
아버지께서 지방과 해외로 집회를 다니실 때면 할머니께서 늘 “그냥 살았어도 떵떵거리며 살 사람이 왜 고생하고 사는지 모르겠다.”며 가슴 아파하셨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하시기 전 할머니의 눈에는 남을 위해 전 재산을 팔아 복음 전하시던 아버지의 모습을 이해하실 수 없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났던 부자 청년은 가진 것이 많아 주님의 제자가 되지 못했습니다(마19:21~22). 그러나 총회장 목사님은 다메섹에서 예수님을 만난 바울처럼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르신 분이었습니다.
총회장 목사님의 성역 37주년을 맞아 ‘내가 만난 이초석 목사님’이라는 주제의 글을 편집팀으로부터 부탁받게 되었을 때 바로 떠오른 것은 우리 교회 이름입니다. ‘예수중심교회’, 바로 ‘예수중심’이 총회장 목사님의 목회 방향이며, 정신인 것입니다.
총회장 목사님처럼 예수중심교회 모든 성도님들은 세상과 예수님 사이에서 우선순위를 ‘예수중심’으로 분명히 정하실 것을 믿습니다.
이월드 목사
우리 목사님 사랑합니다
저는 1987년 6월 둘째 주일날 난생처음 교회라는 곳에 발을 디뎠습니다. 철산리에 있는 철산예루살렘교회였습니다.
철산예루살렘교회 첫 번째 성도인 최순자 전도사님이 6개월간을 아침저녁으로 우리 집에 오셔서 “애기 엄마, 애기 엄마는 예수 믿어야 살 수 있어.”라며 예수 믿으라고 전도하셨습니다. 그런데도 “다음 주에요.” 또 “다음 주에 갈게요.” 하며 미루고 핑계를 대다 결국 교회를 나가기 시작한 게 제 나이 38세가 되던 해였습니다.
그때 저는 우울증에 시달리며 ‘언제 죽을까?’만 생각하고, 가정을 뒤로 한 채 세상을 방황하고 있었습니다. 나와 우리 가정이 고통 속에 위태위태했던 때에 이초석 목사님을 만나 예수님을 영접하고, 목사님께서 더러운 귀신을 내쫓아주신 후 바로 성령을 받고 신앙생활을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주님은 저에게 몇 년간을 기도만 하면 눈물 콧물을 흘리며 회개하게 하셔서 예수께 미친 자가 되었습니다. 성령을 받고 우울증에서 치료되어 새 생명을 얻으니 세상과 나는 간 곳 없고 하늘에 상급과 영광만이 보였습니다.
우리 목사님은 사랑의 종이십니다. 유리방황하고 질병에 고통 받는 성도 한 명 한 명을 가슴이 저리도록 안타까워하시며 위로하시고 예수께 인도하시기에 물불을 가리지 않고 목숨까지도 아끼지 않으시는 사도이십니다.
처음 목사님께 안수 기도를 받고 성령 받은 날, 방배동 인복 유치원 근처에 있는 과일가게에서 수박 한 통을 사주시며 가족들과 함께 맛있게 먹으라고 제 손에 쥐어주셨습니다. 그날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기도원 집회 때마다 목사님께 과일을 사들고 가서 기도를 받고 있습니다.
저는 목사님을 만나 사망의 구덩이에서 새 생명을 얻어 새로 태어난 사람입니다. 목사님을 만나 성령 체험한 이야기를 서술하려면 책 한 권을 써야 할 정도입니다. 목마르지 않는 샘을 주신 예수님, 그리고 복음으로 나를 낳아주신 이초석 목사님, 포기하지 않고 끊임없이 나를 전도해주신 최순자 전도사님의 은혜에 너무나도 감사드립니다.
우리 목사님은 선견자요 선각자이십니다. 지금 이 각박한 세대를 예견하셔서 일찍이 미디어 세계에 입문해 위성으로, 인터넷으로 전국, 전 세계에 복음을 비대면으로 전할 수 있도록 준비하신, 앞을 내다보신 분이십니다. 이 얼마나 다행인지 유튜브로 목사님 말씀에 은혜를 받으며 요즘 새삼 목사님의 선견지명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는 지금 경기도 시흥에서 거주하고 있습니다. 30년 전 나의 첫 열매인 딸에게 요셉 같은 배필을 달라고 기도하며 주의 종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했더니 저의 기도에 응답하사 지금의 시흥예수중심교회 담임목사인 오형우 목사님을 주셔서 이초석 목사님같이 복음을 전하는 목회자로서 사역을 잘 감당하고 있으니 너무나도 감사합니다.
또한 두 부부가 하나가 되어 부설로 요양원을 운영하며 인생의 마지막에 이른 어르신들의 영혼을 주께 잘 인도하는 사역을 수행하고 있으니 주님의 은혜가 한량없고 더 큰 은혜가 없습니다.
죽을 수밖에 없었던 흑암 속에서 한 줄기의 빛으로 다가오신 목사님을 통하여 나의 생명이신 예수님을 만나 목회자의 집안으로 거듭나게 하시고, 주님의 영광이 나타나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주님이 오시는 날까지 목사님과 함께 할 것입니다. 목사님, 감사합니다.
서정희 권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