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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란 사람을 다루는 기술이다(전7:27~29)

1066호 · 2020-10-04
“내 마음에 찾아도 아직 얻지 못한 것이 이것이라 일천 남자 중에서 하나를 얻었거니와 일천 여인 중에서는 하나도 얻지 못하였느니라”(전7:28)

이는 솔로몬의 고백입니다. 솔로몬이 누구입니까? 하나님께 전무후무한 지혜를 받은 자가 아닙니까? 그런 그도 사람을 얻기는 정말 어렵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을 얻기란, 다른 사람을 내 사람으로 만들기란 정말 쉽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 없음은 사람이 경쟁력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사람에게 다리가 되어주고, 사람이 사람을 날게 해주고, 사람이 사람에게 힘을 주고, 사람이 곧 아이디어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목회 초기에 기도한 것은 오직 사람을 보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누가복음 10장 2절,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군들을 보내어 주소서”라는 말씀을 붙들고 사람을 보내달라고 간절히 기도했었습니다. 일꾼이 있어야 씨를 뿌리고, 거름도 주고, 추수도 할 것 아닙니까? 그랬더니 여기저기서 열성적인 일꾼들이 대거 몰려들어 오늘의 기반이 되어주었습니다. 덧붙이자면 사람은 길러 쓰는 게 아닙니다. 골라 쓰는 것입니다. 제가 ‘사람을 길러서 써야지.’ 했더라면 어느 세월에 교회를 일궜겠습니까?

그렇다면 사람을 얻는 방법이 무엇일까요?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의인의 열매는 생명나무라 지혜로운 자는 사람을 얻느니라”(잠11:30). 지혜가 있으면 사람을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지혜의 근본이신 하나님 말씀 안에 답이 있습니다. 바로 이 말씀입니다.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마7:12). 그렇습니다. 상대를 대접해야 내 사람이 됩니다. 저는 이 말씀을 이렇게 풀어 자주 말합니다. “가마를 탄 사람은 가마꾼을 생각하라.” 무슨 말인가 하면 내가 지위가 높다고 아랫사람을, 내가 갑이라고 을을 무시했다가는 가마꾼이 가마를 뒤집어엎을 수 있다는 겁니다. 주는 대로 받는 것이니까요. 가마꾼이 가마를 뒤집으면 별수 있습니까?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땅바닥에 내동댕이쳐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가마를 탄 사람이 가마꾼을 대접하면 행여나 흔들릴세라, 행여나 불편할세라 지극정성으로 가마를 들 것입니다.

상대를 인격적으로 대하는 것이 사람을 얻는 길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마22:39)고 하신 것입니다. 그럼요, 내 아랫사람을, 내 동료를 내 몸처럼 사랑하면 내 사람이 됩니다. 그러나 반대로 인격을 짓밟고, 폭언에 폭력까지 행사한다면요? 막강한 재력을 지닌 자들이 아랫사람을 함부로 대해서 사회적인 이슈가 된 적도 있었지 않습니까? 거대한 항공모함도 거센 파도와 해일 앞에서는 맥을 못 추는 겁니다. 뒤집히고 맙니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하는데 하물며 사람이 인격적인 모욕을 당하고 가만있겠습니까?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참을 때까지 참지만 수위가 넘으면 ‘너도 당해봐라.’ 하며 이판사판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열 명의 동지보다 한 명의 적을 두면 안 된다’고 누누이 강조하는 겁니다.

여러분, 나와 함께 일하고, 나와 함께 가는 사람은 내 분신이나 진배없습니다. 내 몸이라는 겁니다. 그들이 내 눈이고, 내 귀이고, 내 발이라는 겁니다. 그런데 함부로 하면 누가 아프고 누가 힘듭니까? 바로 납니다.

누구든 인격적인 대접을 받고 싶어 합니다. 아무리 물질만능시대라고 해도 돈에 앞선 것이 인격적인 대우를 받는 것입니다. 누구든 존중받을 권리, 누구든 행복할 권리가 있으니까요.

몇 년 전 일이 생각이 나네요. 미국 집회를 마치고 만찬을 즐길 때였습니다. 인원이 많다 보니까 테이블을 여러 개로 나눠 앉았는데, 좀 떨어진 테이블 쪽에서 “저쪽은 입이고, 우리는 주둥이야.” 하는 말이 들렸습니다. 아마 만찬을 준비한 주최 측에서 강사인 제 테이블에 신경을 좀 더 쓴 모양입니다. 다른 테이블과 음식이 달랐던 거지요. 그러니 저를 도와 집회를 함께 했던 사람들이 섭섭할 수밖에요. 물론 그 사람이야 장난으로 말했겠지만, 저는 그 말을 마음에 새겼고, 본 교회에 돌아와 모든 교역자들에게 ‘특별한 대접을 받으려 하지 말고, 성도들과 똑같이 먹어야 한다.’고 지시했습니다. 저는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내가 맛있는 거 먹으면 내 옆 사람도, 내 아랫사람도 맛있는 것 먹고 싶은 겁니다. 내가 좋은 곳에 놀러 가면 그 사람도 놀러 가고 싶고요. 내가 쉬면 그 사람도 쉬고 싶은 겁니다.

여러분, 장인(匠人)은 연장을 귀히 여겨 잘 다룹니다. 연장에 금이 가거나 망가지면 일을 못하기 때문에 살살 다루고, 가끔 기름칠도 해주고, 일이 끝나면 잘 닦아 챙깁니다. 내 옆 사람으로 인해, 내 아랫사람으로 인해 일이 진행되고, 일이 수월하다면 장인이 연장을 챙기듯 해야 합니다. 그래야 오래 함께 일할 수 있습니다. 버럭 화나 내고, 욕이나 하고, 감정을 건드려서는 안 됩니다.

이제 나를 돌아볼 시간입니다. 내 옆에 사람이 없다면, 우리 집 결혼식이나 초상이 났을 때 사람들이 와 주지 않는다면, 내가 아파도 전화 한 통 없다면 남을 원망할 것이 아니라 나를 원망해야 합니다. 내가 상대를 대할 때 인격적으로 대접하지 않았고, 베풀지 못했음을 반성하고 회개해야 합니다.

아무리 멋진 영화라고 해도 주연 혼자서는 영화를 만들 수 없지요. 조연들의 명품 연기가 더해질 때 명화가 탄생하는 법.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 일하는, 드러나지 않는 곳에서 일하는 자들을 귀히 여길 때 그 교회가, 그 기업이, 그 나라가 살아납니다. 보이지 않는 오장육부가 튼튼해야 건강하니까요.

꿀을 얻으려면 벌통을 발로 차면 안 되듯 사람을 얻으려면 감정을 건드리지 말고, 감동을 시키면 됩니다. 감동의 입자는 생각보다 의외로 작은 것입니다. 따뜻한 말 한마디, 격려의 말 한마디, 그리고 작은 선물에도 감동은 일어납니다.

개혁은 내 안에서 일어나야 하고, 혁신도 내면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지금까지 인맥 형성에 실패했다면 오늘의 말씀을 깨달아 실천하여 내 삶에 개혁을, 혁신을 이룹시다. 그래서 다윗처럼 많은 사람을 얻어 당신이 소원하는 곳까지 이르기를 바랍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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