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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7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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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음이 맞는 자와 살아야 행복하다(창21:9~19)
      

오래전, 장애가 있는 성도분이 제게 구두를 선물했었습니다. 악어가죽으로 만든 거라 아주 비싸다고 했습니다. 마침 그때 일본집회가 있었는데, 그 성도가 일본 갈 때 꼭 신고 가라고 당부하기도 하고, 또 없는 형편에 큰 선물을 해준 성도의 마음이 고마워서 그걸 신고 일본에 갔습니다. 그런데 웬걸, 이게 제 발에 안 맞는 겁니다. 집회 장소인 우에노 공원을 한 바퀴 둘러보는데 발뒤꿈치가 얼마나 아프고 쓰린지, 신발을 벗어보니까 발뒤꿈치가 다 까져 있더라고요. 너무 아프니까 체면이고 뭐고 없더군요. ‘에라, 모르겠다’ 하고 신발을 벗고 맨발로 다녔습니다. 여러분, 명품 신발이 어떤 건 줄 압니까? 수백만 원하는 유명 브랜드가 아니라 내 발에 맞는 신발이 명품 신발입니다. 내 체질에 맞는 약이 명약이고요. 아무리 좋은 씨앗도 토양이 맞아야 실한 열매를 거두는 법입니다.

이걸 인생에 적용해볼까요? 행복한 삶, 명품 인생은 나와 맞는 사람과 함께 하는 것입니다. 나와 맞는 사람과 살고, 맞는 자와 결혼하고, 맞는 자와 동업하고, 맞는 자와 정치해야 행복합니다. 맞지 않으면 미리 지옥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왜냐? 사람(人)은 글자 모양처럼 나와 또 다른 누군가가 기대어 살게 되어 있고, 더욱이 인생은 다른 누군가와 이인삼각(二人三脚) 경기를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인삼각 경기란 두 사람이 안쪽의 다리를 서로 묶고 함께 달리는 경기입니다. 그때 서로 마음이 맞지 않으면 계속 넘어지고, 그러다 보면 다투게 되어 전진하지 못하니 결승선에 이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상대와 호흡이 척척 맞으면 이것보다 신나고 재미있는 게임이 없습니다. ‘하나, 둘’ 하면서 결승라인까지 신속하게 도착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그 상대는 부모나 형제일 수 있고, 부부일 수 있고, 친구나 동료나 동지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와 마음이 안 맞는다면 어떨까요? 저는 42년 가까이 목회하면서 사람과의 관계로 고통받는 성도들을 많이 봤습니다. 저는 그때마다 성경 속에서 답을 찾아줍니다.

가족과의 관계가 힘들어 고통하는 자에게는 아브라함을 예로 들어줍니다.

아브라함도 가족과의 갈등으로 고민했습니다. 먼저는 사라의 몸에서 난 아들 이삭과 하갈의 아들 이스마엘의 다툼 때문이었습니다. 형인 이스마엘이 이삭을 희롱하니, 그것이 어른 싸움으로 번지고, 그래서 집안에 편할 날이 없었습니다. 아브라함은 둘 사이에서 힘들었어요. 이스마엘도 내 자식이요, 이삭도 내 새끼니 누구 편을 들 수도 없고…(창21:11). 이 일로 근심에 싸여 번민하는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사라가 하라는 대로 해라”(창21:12). 사라가 아브라함에게 “그 여종과 그 아들을 내어보내라.”라고 했거든요.

아브라함은 하나님 말씀대로 사라의 말을 듣고 하갈과 이스마엘을 내보냈습니다. 떡과 물 한 가죽부대를 어깨에 메어주고 말입니다. 아브라함의 마음은 찢어졌겠지요. 그러나 만일 아브라함이 계속 하갈과 이스마엘을 정 때문에 끼고있었다면아 브라함집안은매일다툼으로 시끄러웠을 것이고,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할 수도 있었을 겁니다.

또 아브라함은 조카 롯과의 관계도 정리한 적이 있습니다. 서로의 소유가 많아지다 보니 아브라함의 가축을 기르는 목자와 롯의 가축의 목자가 서로 다투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롯에게 제안합니다.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내가 좌하리라”(창13:9).

여러분, 갈라서는 것이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마음이 하나가 되지 않아 계속 시끄럽다면, 갈라서는 것이 서로 사는 길입니다. 고름이 살이 안 되거든요. 고름은 짜내야 큰 수술로 이어지지 않습니다.

만일 야곱과 에서가 장자권을 두고 으르렁거릴 때 그의 어미 리브가가 그들을 갈라놓지 않았다면 어찌 되었을까요? 아마도 가인과 아벨 짝이 나지 않았을까요? 리브가처럼 하와가 현명했더라면 살인이라는 참극은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 말이죠. 부부관계는 그냥 성경 말씀만 읽어드리고 마치겠습니다. 잘못 이해하면 이혼을 강요하는 말로 들리기 때문입니다. 제가 부모 형제나 부부를 갈라놓으려고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너무 고통스럽거든, 너무 다퉈 큰 사고가 일어날 수도 있기에 미연에 방지하라는 뜻입니다. 부부관계에 대해서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다투는 여인과 함께 큰 집에서 사는 것보다 움막에서 혼자 사는 것이 나으니라”(잠21:9).

그래서 인륜지대사인 결혼은 처음부터 신중해야 합니다. 학벌이 좋다고, 재산이 많다고, 인물이 좋다고 덜컥 선택하지 말고, 오래 사귀면서 이 사람이 나와 맞는지 천천히 살펴야 검은 머리가 파뿌리 되도록 살 수 있습니다.

또 저는 맞지 않는는들에게도경의 예를 들어드립니다. 사도행전 15장에 보면 믿음의 사도인 바울과 바나바가 마가의 동행 문제를 놓고 대립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신앙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마음이 맞지 않아서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서로 갈라서기로 합니다. 바울은 실라를 데리고 수리아로,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구브로로 떠납니다. 마음이 맞지 않는데도 그냥 참고 갔다면, 그들은 대업을 이루지 못했을 것입니다.

저도 해외 집회를 다닐 때 초창기에는 많은 사람을 데리고 다녔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두세 명만 데리고 다닙니다. 그들은 저와 생각과 마음이 너무 잘 맞는 찰떡궁합입니다. 그러기에 적은 인원으로도 대형집회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전국의 모든 목회자들과 제가 한 마음이기에 단단히 예수중심교단을 지키고 있는 것 아닙니까? 여러분, 하나님도 마음이 합한 다윗을 통해 그의 계보를 타고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마1:1). 예수님도 제자들을 택하실 때 조건이나 인물을 보신 것이 아니라 마음이 맞는 자를 택하셨습니다(막3:13). 하물며 사람이겠습니까?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신앙이 맞는 자와 결혼하고 일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하며 빛과 어두움이 어찌 사귀며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고후6:14~16). 빛과 어자두움은 함께 할 수 없고, 기름과 물은 절와일대 하나가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애초에 하“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 하신 것입니다. 믿지 않는 자와 면결혼하면 제사 문제가 생기고, 주일이면 ‘놀러 가자’와 ‘교회 가자’로 실랑이해야 하고, ‘왜 십일조를 드리냐, 왜 주일예배만 드리면 되지, 교구예배까지 나가냐’ 등등 부딪쳐야 할 문제들이 너무 많습니다. 사업도 그렇습니다. 창업 때 ‘예배를 드릴 것이냐 돼지머리를 놓고 제사를 드릴 것이냐’, ‘주일에도 일을 할 것이냐 주일을 지킬 것이냐’, 이런 문제들로 감정이 생기게 되고, 이것이 발단이 되어 마찰이 서 고커질 수 있습니다. 다투면 방축이 무너지는 꼴이니 가정인들, 사업인들 제대로 되통받성도겠습니까?

오늘 이 말씀을 드리는 것은 지금 당장 이성혼하라고 드리는 말씀이 아닙니다. 동업을 깨라는 것도 아닙니다. 앞으로 일을 진행할 때 하나님의 말씀을 신중하게 참고하라는 말입니다. 학연, 혈연, 지연에 얽매이지 말고, 마음이 합한 사람인지를 따져보라는 겁니다.

여러분, 마라토너에게 가장 힘든 것은 언덕이 있는 코스가 아닙니다. 신발 속의 작은 모래 한 알입니다. 작은 모래 한 알이 별 거 아닌 거 같지만, 그것이 마라토너를 고통스럽게 하고, 결국 달리지 못하게 만듭니다. 잠시 숨을 돌리며 그것을 빼내야 남은 구간을 잘 달릴 수 있습니다. 인생의 마라토너인 우리, 작은 모래알 같은 존재가 있거든 빼내고 달립시다. 신발을 벗고 터는 시간이야 좀 걸리겠지만, 그래야 나머지 인생 구간을 편안히 달릴 수 있습니다.

행복해지길 원하시죠? 마음이 맞는 자, 신앙이 맞는 자를 찾으십시오. 마음이 맞는 자는 우주와도 안 바꾸게 될 것입니다. “마음의 즐거움은 얼굴을 빛나게 하여도 마음의 근심은 심령을 상하게 하느니라” (잠15:13).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