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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7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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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앙에 결코 타협이란 없다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에게 주신 제1계명입니다.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찌니라”(출20:3).

곧 오직 하나님만 섬기란 명령입니다. 이는 사정도 아니고 부탁도 아닙니다. 지엄한 절대주권자의 명령, 왕의 명령인 것입니다. 여기에 동의하든, 배타하든 그것은 인간의 자유의지에 달린 것이지만, 그에 따르는 결과는 오롯이 인간 스스로 감내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또 뭐라 말했습니까?

“대저 이방인의 제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이요 하나님께 제사하는 것이 아니니 나는 너희가 귀신과 교제하는 자 되기를 원치 아니하노라 너희가 주의 잔과 귀신의 잔을 겸하여 마시지 못하고 주의 상과 귀신의 상에 겸하여 참예치 못하리라 그러면 우리가 주를 노여워하시게 하겠느냐 우리가 주보다 강한 자냐”(고전10:20~22).

또 마태는 뭐라 말했나요?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마6:24).

누가도 말했습니다.

“집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길 것임이니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눅16:13).

즉, 하나님은 그 어느 것과도 견줄 대상이 아니란 겁니다.

목사님은 명절 때가 되면 ‘신앙에는 타협이 없다’는 설교로 우리의 영적 정신무장을 주문하십니다. 그러나 어찌 이것이 명절 때만 국한된 문제이겠습니까? 이는 우리 인생의 바다에 수시로 넘실대는 파도와도 같은 일이기 때문입니다.

“인간관계, 사업관계, 정치, 외교 등을 망라하는 수많은 문제에는 반드시 주고받는 타협의 기술이 필요합니다. 성공적인 타협을 통해 서로 윈윈하는 길을 찾는 것이 인생의 지혜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절대, 결코 타협해서는 안 되는 것이 있습니다. 신앙만은 결코 타협의 대상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하지 말라는 것은 목숨을 걸고라도 지켜야 하는 것이 신앙입니다. 우리 믿음의 선진들이 타협 없는 신앙의 길을 가느라 무수한 죽임, 환난과 핍박을 당해야 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의 이야기는 모든 신앙인의 귀감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자굴로, 풀무불로 위협해도 그들은 죽음을 각오하고 신앙의 절개를 지켰습니다. 어디 이들뿐입니까? 초대교회 시절, 예수를 믿는다는 사실 하나로 수많은 크리스천들이 순교의 길을 가야 했습니다. 우리 교회 역사에도 구한말 김대건 신부의 순교가 있었고, 제사를 거부하다 엄청난 핍박과 순교를 당한 크리스천들이 많습니다. 또한 일제 치하에 신사참배를 거부하다 주기철 목사를 비롯한 많은 크리스천들이 순교를 당했습니다.

저는 집안의 장손이었지만 예수를 믿고 제사를 거부하다 집에서 내쫓겼습니다. 그래도 타협하지 않았더니 우리 집안에 동생들, 아들, 조카까지 주의 종이 되었고, 저를 내쫓았던 어머니까지 구원하는 역사가 있었습니다.

직장에서 돼지 대가리 앞에 절하라는 상사의 눈치를 보고 있습니까? 명절 제사에 전전긍긍하고 있습니까? 아닙니다. 세상 모든 것은 타협할 수 있지만, 신앙만은 절대 타협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시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네가 하나님보다 더 강한 자면 하라는 겁니다(고전10:22).

다니엘처럼, 사드락과 메삭, 아벳느고처럼, 우리 믿음의 선친들처럼, 저처럼 타협 없는 신앙으로 하나님께 인정받고 사랑받는 여러분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한은택 목사